"이젠 웃을일만 남았죠"
"이젠 웃을일만 남았죠"
  • 석재동 기자
  • 승인 2011.11.14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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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설득 1년… 비닐하우스 생활 1년…
안길용씨가 새끼오리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유현덕기자

④ 오리로 새 인생 일군 괴산 감물면 안길용씨

수원서 식재료도매업 승승장구

학교급식 전면 시행후 하향곡선

사육시설 설치 … 현지인 반발 커

주민들 개별 설득 … 진정성 알아줘

45일간 사육 … 연 8회 출하

지난해 친환경 인증 결실도

"일반적인 귀농은 주민들과의 마찰이 없지만, 축산업은 달라요. 악취와 각종 오·폐수 발생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가 상상 이상입니다. 마을주민의 일원이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충북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산기슭에서 오리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안길용(59)·조명숙씨(57) 부부. 지금은 어엿한 오리농장주가 돼 있지만, 이들이 오리 사육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숱한 시련과 아픔이 있었다. 경기도 수원에서 유통업체를 운영하던 안씨 부부가 귀농한 것은 4년 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년간 수원에서 햄과 어묵 등의 식재료도매를 하던 부부는 소득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사업이 쪼그라들면서 쫓기듯 수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다고 배워둔 기술이나 쌓아둔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년 전에도 연 소득이 5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잘나가던 사업가였던 이들 부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수원을 떠날 당시 월 소득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사업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전면적인 학교급식 시행. 부부의 사업은 도시락 반찬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김치 등이 차지하고 있던 도시락 반찬통을 햄과 어묵 등이 점령하면서 덩달아 사업도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급식 전면 시행은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마켓 등에 햄과 어묵 등 도시락 반찬용 식재료를 공급하던 이들 부부에게 소비자를 한꺼번에 빼앗아 버린 결과로 이어졌다. 학교급식업체를 상대로 영업을 해 봤지만, 자본력과 영업력이 월등한 대기업 계열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안씨는 "학교급식이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도 수많은 중소상인들의 먹거리를 빼앗아간 정책"이라며 "아직도 학교급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특별한 대책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나가던 안씨 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준 존재가 바로 오리다.

안씨보다 1년 먼저 음성군으로 귀농한 친구가 그에게 오리 사육을 추천했고, 그곳을 견학하고서 새로운 삶에 확신이 생겼다.

친구가 추천한 오리 사육은 ㈜주원산오리에서 오리 사육을 위탁 받는 시스템으로 실패 가능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었다. 주원산오리에서 새끼오리부터 사료까지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대신, 농가에서는 위생적으로 사육만 해 주면 그에 대한 대가를 회사 측에서 받아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였다.

세계적으로 단백질 위주로 식단이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특히 닭·오리 등 백색육이 건강식으로 환영받으며, 그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점도 그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안씨 부부로서는 사육시설만 설치하면 됐다. 유경험자이자 귀농선배인 친구의 주선으로 주원산오리와의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만, 회사 측은 본사가 위치한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탁사육장을 만들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 인근에 사육장을 짓고 싶었지만, 수도권과 인접한 진천과 음성지역 땅값은 이미 많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하고, 회사로부터 1시간 이내에 자리잡은 현재의 자리다.

하지만 사육시설 설치는 시작단계부터 주민들과의 갈등을 불러왔다.

형제와 친인척들의 도움으로 현재의 사육사 터를 매입하고 군청으로부터 허가도 다 받았지만, 마을주민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마을 산자락에 오리 사육장이 들어설 경우 악취와 오·폐수로 환경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였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이들 부부의 이주를 반대하는 플래카드만 8개가 나붙었다. 물러날 곳이 없던 부부는 그때부터 1년간 반대하는 주민들을 일일이 접촉해 이해를 구했다.

안씨는 "시골 마을이라는 곳이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심한 곳이다. 더구나 냄새가 많이 난다는 오리 사육사가 들어선다고 하니 주민들의 반대는 더욱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때 내 상황은 물러설래야 물러설 곳이 없었다. 닭과 달리 오리 분뇨는 냄새가 거의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무조건 마을 주민들과의 접촉을 늘려 갔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진정성을 가지고 주민들을 접촉하니 어느 순간 이해해 주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형제 등의 도움으로 오리 사육은 시작했지만, 시설 투자비가 만만치 않았다. 현재까지 사육사 8개 동을 짓는데 투입된 금액만 10억원가량. 집을 장만할 여유까지는 없던 이들 부부는 감물면사무소 인근 사글세 15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1년, 사육사 앞 비닐하우스에서 또다시 1년을 살아야만 했다.

3년째 접어들던 지난해가 돼서야 조금씩 모은 돈으로 사육사 앞에 조립식 주택을 짓고 노모와 함께 입주할 수 있었다.

안씨는 "되돌아 생각해 보면 축산으로 귀농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본이 70% 이상은 돼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을 경우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지나치게 많은 대출을 떠안고 시작해서는 그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구조"라고 예비귀농인들에게 조언했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한 이들 부부는 이제 전자동 사육사에서 오리 1만5000마리를 기르는, 괴산군을 대표하는 축산농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새끼오리를 입식해 45일간 사육하면 출하한다. 연간 8회 정도 출하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 부부의 손을 거쳐 키워지는 오리만 해도 연간 10만 마리 이상이다. 출하 후 같은 자리에서 한 달간 사육이 제한되는 닭과 달리 오리는 곧바로 입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위생적인 사육을 위해 회사 측에서 새끼오리 공급량을 제한하고 있다. 연간 소득도 5000만원을 넘는다.

지난해에는 친환경 인증까지 받았다.

이들 부부의 손에서 길러지는 오리는 먹는 사료부터 다르다. 항생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항산화제인 아스타잔틴을 생성하는 미생물이 든 사료를 먹는다.

아스타잔틴은 크릴새우, 랍스타, 게, 연어, 고구마, 해조류 등에 들어 있는 항산화제로 항산화력이 비타민E의 1000배에 달하며 붉은색을 띤다. 산화를 억제하는 항산화 기능은 세포 노화를 예방한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휩쓸 때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육사 바닥에는 왕겨나 톱밥을 깔아 오리 분뇨에서 나는 악취를 차단했다.분뇨와 톱밥 등 자연스럽게 혼합돼 자연발효하면서 악취가 줄어드는 원리이다. 사육사와 맞붙어 있는 이들 부부의 집에서조차 분뇨 냄새를 거의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사육사의 환경이 쾌적하다.

먹이와 물 공급, 사육사 바닥에 왕겨나 톱밥 깔기 등의 모든 작업은 전자동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많은 시설비가 투입됐지만, 직원을 두지 않고서 이들 부부의 힘만으로 사육이 가능한 장점이 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귀농하기를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마을 주민들과도 친해져서 애경사가 있으면 빼놓지 않고 다닐 정도가 됐다"며 환한 웃을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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