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명문가 안보견학을 다녀와서
병역명문가 안보견학을 다녀와서
  • 유금상 <2011년도 병역명문가>
  • 승인 2011.11.09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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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지난달 대전충남지방병무청이 병역명문가 가족들을 초청해 실시한 안보견학에 평택 해군 2함대를 다녀왔다.

병무청 직원이자 병역명문가인 나도 안보현장을 직접 보는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기꺼이 참석하게 됐다.

이미 언론을 통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누차 접해 왔지만 생생한 그날의 현장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길이 88m·높이25m의 거대한 천안함의 함미부분이 3분30초 만에 완전히 바다에 수장되어 버리고, 젊은 대한의 46용사 목숨을 앗아가 버린 이토록 처참한 상황은 도대체 왜 일어났는가?

누가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는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천안함 46용사들의 추모관으로 향했다.

천안함 피폭 당시의 여러 가지 모습이 담겨 있는 한쪽에는 가족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여자친구를 보고 싶어하는 편지,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어린 아이의 사진이 전시돼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 가문은 올해 병역명문가에 선정됐다.

병무청은 2004년부터 3代(조부·부·백부·숙부·본인·형제·사촌형제)가 모두 현역복무를 성실히 마친 가문을 찾아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원실에 근무해 병역명문가 신청접수를 담당하게 되면서 아들이 군대에 다녀오면 나도 병역명문가를 신청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방문하는 어르신들을 보니 더욱 반가워 열심히 상담해 드렸다.

마침 나의 아들도 징병검사에서 1급 현역판정을 받은 날 함께 점심을 하며, 군대는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자식도 기꺼이 나의 생각에 동의했다.

다음 해 1월 아들은 군에 무사히 입대를 하게 되었고, 정말 많은 우여곡절 속에 2010년 12월 빛나는 예비군마크가 달린 군복을 입고 현관문에 들어섰다.

감히 가문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생소했던 우리 집안에 국가에서, 그것도 내가 30년 이상 몸담고 있는 병무청에서 우리 집안을 ‘병역명문가’라 칭하고, 명문가패와 인증서를 수여해 주던 날...

가슴에 꽃을 달고는 조금 쑥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 아버님과 아들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이제는 나도 병무청 직원이기 이전에 3대 가족 모두 군에 다녀온 병역명문가로서, 입대 장병들에게 좀 더 당당히 군대에 다녀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님은 1950년대 육군특무부대에서 2등중사로 전역할 때까지 집안걱정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한 전철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생스럽지만 열심히 생활했던 복무시절을 자주 회상하셨다.

드디어 아들인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 아버님은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너는 좋겠다. 집안 걱정 없이 군에 갈 수 있어서...” 라는 말로 배웅을 해주셨다.

천안함 피격 1주년을 맞아 대통령께서 “천안함 사건이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임을 자각하고 새로운 각오로 철저히 대비해 더욱 강건한 국가로 거듭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안보현장을 견학하고 나니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올해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 후손들이 살아갈 이 나라를 굳건히 지키고 융성된 나라로 물려주기 위해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병역명문가의 일원으로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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