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의거를 되새기며
안중근 의사 의거를 되새기며
  • 조흥래 <충주보훈지청 복지주무>
  • 승인 2011.10.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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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102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단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고 하던 겨레 사랑의 결의를 실천해 보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권이 침탈돼 국운이 기울던 시절 일본 제국주의를 호령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해 한국인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만 30세의 청년 안중근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기차편으로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일본인으로 가장해 하얼빈 역에 잠입했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 3발을 명중시켜 총살시켰다. 거사 후 총을 내던지고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펼쳐 “대한제국 만세”를 부르다가 러시아 경찰에 체포돼 일본 정부에 넘겨졌고 뤼순 감옥에서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같은 해 3월 26일 32살의 젊은 나이로 사형됐다.

그는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양평화의 약속을 깨뜨리고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원수가 됐으며 이에 조선인들은 독립전쟁을 벌이게 된 것으로 동양평화를 실현하고 일본이 자존하는 길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되돌려주고 만주와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버린 뒤 서로 독립한 3국이 동맹해 서양세력의 침략을 막고 나아가 개화의 영역으로 나아가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안 의사가 언급하신 ‘합성산패 만고정리’(合成散敗 萬古定理=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한다는 뜻)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간의 폭과 사상의 깊이에서 더할 수 없이 큰 인물이셨던 안 의사의 동양평화와 인류공영의 정신은 지금도 세계인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며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안 의사의 최후의 유언은 102년 전 이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며 절로 숙연해 짐을 느낀다.

처형 직전 그는 두 아우에게 “나라가 독립되거든 유해를 대한민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해를 찾을 길이 없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2주년을 맞아 그를 영웅시하기만 하기보다는 삶과 죽음, 사상과 행적을 함께 해석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옳고 바른 길을 가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안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인류애를 본받아 일신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하고 민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됨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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