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덕이 있는 감나무 1
일곱 가지 덕이 있는 감나무 1
  • 김홍은 <산림학 박사>
  • 승인 2011.10.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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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은의 나무이야기

우리 속담에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고 한다. 이는 지지하게 작은 것이 많아, 있어 봐야 큰 것 하나만도 못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감에 대한 칭찬이기도 하다.

감 고장의 인심이라 함은 감나무 자체의 후덕한 인심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말이 아닌가 한다. 길을 가다 허기가 지면 감나무 밑에 가서 두리번거리다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으면 허기를 면할 수가 있다. 가을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만 바라보아도 마냥 흐뭇하다. 예로부터 기제사에는 삼실과로 감, 대추, 밤이 꼭 들어갔다. 이를 보면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감은 우리 생활에 사랑을 받아 온 과일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감나무는 칠덕(七德)을 지니고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잎과 가지가 우거져 있어 그늘이 많다. 셋째, 나무에다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넷째, 벌레가 꼬이지 않으며, 다섯째, 가을이 되면 단풍이 아름답다. 여섯째, 열매를 얻을 수 있어 좋고, 일곱째, 낙엽은 거름이 되어 좋다고 한다.

지구상에는 수백 종의 나무가 있지만 이 중 감나무는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오래 묵으면 속이 검어 이를 먹감나무(黑枾木)라 하는데 결이 단단하며 무늬가 아름다워 귀중한 가구재나 세공용으로 쓰고 있다.

조선시대의 오성 이항복에 대한 어릴 때의 이야기가 있다.

오성 이항복은 어린 시절에 자기 집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가 심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 감나무 가지가 옆집에 사는 권율 장군의 집, 담 너머로 뻗어 나갔다. 권율 장군의 하인들은 그 가지에 열린 감을 해마다 따먹었다. 오성은 이를 참다 못해 하루는 권율 장군을 찾아가 거처하는 방문의 창호지를 찢어 팔을 쑥 내밀고는 “대감님, 이 팔이 누구의 팔입니까?” 하고 물었다. 권율은 “그것은 네 팔이지 누구 팔이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오성은 “그렇다면 저 가지에 달린 감은 어느 집 감입니까?”하고 물었다. 권율 장군은 “너의 집 감이 아니냐?”라고 대답하자 오성은 “그러면 앞으로는 그 가지에 달린 감은 모두 우리 집으로 돌려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권율은 하인을 시켜 자기네 울안으로 달린 감을 모두 따서 오성네 집으로 모두 보냈단다. 그 후, 장군은 어린 오성의 기지에 놀라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어 사위로 맞이했다 한다. 감 때문에 장가를 들게 된 오성은 감나무가 맺어준 백년가약이 아니던가.

중국의 정건이라는 사람은 종이를 구할 수가 없어 감잎에다 글씨를 써서 공부를 하여 벼슬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토록 감잎은 넓고 부드러워 글씨를 쓸 수가 있다함은 생각만 하여도 얼마나 운치가 있는가. 가을이 되면 오색찬란한 감잎에다 시제(詩題)를 담아 자연을 노래하고 인생을 음미하며 살아가는 풍류스러움이야말로 오직, 감나무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멋이 아닌가.

■ 김홍은은? 1941년 충북 청원 출생. 충북대 교수 역임. 수필가. 충북문인협회장, 충북수필문학회장, 대표에세이 회장 등을 역임. 현재 충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강좌. 저서로 ‘나무가 부르는 노래’, ‘꽃이야기’, ‘나무이야기’, ‘자연예술과 문학’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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