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르지와 흑묘백묘론
스쿠르지와 흑묘백묘론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10.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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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찰스 디킨스의 동화 ‘크리스마스 캐럴’과 그 이야기의 주인공 ‘스쿠르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유명세를 띠고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쿠르지는 알지만, 정작 그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 찰스 디킨스의 동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명제는 마치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다름없는 것인데, 어찌 보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스쿠르지의 직업은 고리대금업자이다. 그저 단순히 악착같이 일만 하고 돈에만 집착하는 구두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스쿠르지, 그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주고 받으며 행복해하는 크리스마스조차 그저 수금하기 좋은 날로 여긴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스쿠르지의 이러한 캐릭터는 자본의 탐욕적 성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의외로 본말이 전도된 상황과 자주 맞닥트리며 당황해 한다.

작품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작품 속 캐릭터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가릴 것 없이 우선 잘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중국의 성장과정은 결코 단순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스쿠르지와 크리스마스 캐럴은 우리에게 자본의 탐욕 대신 훈훈한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흑묘백묘론은 어찌 됐던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커진 중국의 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주 필자의 논단 ‘철수와 원순, 그리고 월 스트리트’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문제의 핵심은 금융자본의 탐욕성과 대중의 운동성, 그리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의 건강한 회복에 있는 것인데, 아무래도 글재주가 그걸 이해시키는 데 부족했던 모양이다.

하여, 되도 않게 스쿠르지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그리고 흑묘백묘론까지 들먹이는 것은 그만큼 작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은 물론 그 여파가 곧 한국에도 상륙해 우리에게까지 직접적으로 미칠 것으로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말았다고 푸념한다.

성실한 노동을 통해, 그 대가로 얻은 재화를 꼬박꼬박 저축하면서 부자가 된다? 개도 웃을 일이다.

지금 세상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돈이 돈을 버는 것이지 결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한탄 속에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쉬운 선택을 해 왔다.

내 집 마련도 어려운데 그저 쏟아져 내리는 뉴타운 공약에 도취해 집단적 환각에 빠진 것도 결국 대중의 선택이었고, ‘월가를 점령하라’는 명제로 미국의 심장부에 모인 시위대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앞으로의 추이를 궁금해 하는 것도 역시 대중의 모습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불과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들이 빚을 갚는 대신 연봉인상 타령을 하고 있고, 그들은 국민소득 대비 1인당 연봉이 미국보다 높은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이자 이익 비중은 미국의 은행보다 훨씬 높은 86.5%에 달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거기에는 또 소득분배의 불균형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외환위기 때인 지난 1997년 0.264에서 지난해 0.315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소득 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되는 조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1만원 이하의 상품구입에 대해 카드결제를 거부할 수 있게 하려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금융당국의 입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궁금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현금은 꼭, 그리고 금융자본인 카드회사의 수수료율은 건드릴 수 없으니 잔돈이나 쓰는 서민이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도 현금영수증은 계속 챙겨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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