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사과
세 개의 사과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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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애플사를 통해 성공신화를 일궈낸 스티브 잡스의 사망소식을 놓고 인류 문명사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세 개의 사과’라는 말을 통해 그가 인류에게 남긴 과학적 업적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첫 번째 사과는 인간에게 원죄를 심어준 이브의 사과다. 여인들에게 출산의 고통을, 남자에게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신의 저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베어 문 사과부터 출발한다. 두 번째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들어 과학발전에 큰 획을 그은 뉴턴의 사과다. 세 번째가 애플사의 로고인 사과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압축시켜 손아귀에 쥐게 한 그의 업적은 소수가 독점하던 정보를 일반인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정보의 소비자로 머물던 일반대중을 정보를 생산해 내고 확대하는 정보생산의 주체로 바꿔 놓았다. 이러한 정보향유의 동시성은 현대인들의 삶의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현대인은 하룻밤만 지나도 어제의 정보는 낡고 무의미한 정보가 되는 빠름의 시간에 살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진실을 가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정확한 정보보다 빠른 정보가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다. 나이 차이를 두고 세대를 구분하던 시대는 옛말이다. 말 그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이제는 첨단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폰 활용을 잘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세대를 구분한다. 첨단기능의 습득 정도가 세대 간을 넘어 계층을 나누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과연 빠르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학의 진보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할 여지가 있다. 빠름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과학문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천천히 주의를 돌아보며 사는 느림의 삶(Slow Life)이 새롭게 조명을 받는다. 자동차를 타고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둘러보는 여행에서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강과 산 주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자연에 기대고 사는 작은 생명들을 느끼며 걷는 둘레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빠름이 주는 피로감이 느림의 미학을 생각해 낸 것이다.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정보를 공유하는 기능은 인간의 노동 강도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스마트 폰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로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고, 상황을 핑계 삼아 보고를 미루는 것은 엄연한 근무태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30분 정도니 웬만한 곳은 하루 생활권 안에 든다. 출장을 핑계 삼아 소주 한잔 나누고 돌아오던 시대는 낭만이 된 지 오래다.

빠름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현대문명에 인간 자신은 점점 고립되어 간다. 쌍방향 정보 통신인 페이스북, 트위터는 단문의 안부와 정보만 취급할 뿐 인간에 대한 본연의 가치인 따뜻함을 잃어가고 있다. 혼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 폰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안부를 묻지만 정작 인간은 외롭고 소외감은 더 커지고 있다. 가상공간에 수백 명의 친구를 두지만,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느림은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를 말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고 지나온 길을 반추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다. 긴 숨으로 평범한 일상의 작은 행복을 느끼며 보듬어 보려는 노력이다. 지나온 발걸음을 돌이켜 자신을 돌아보고, 내려놓는 것만큼 바쁜 일이 없다.

탐험가를 안내하던 인디언이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에게 “너무 빨리 걸었어요. 우리는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라고 한 말처럼 바쁜 걸음을 멈추고 늘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스티브 잡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역설적 교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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