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와 한국 재벌
미국 월가와 한국 재벌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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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미국 젊은이들의 시위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재자의 압정에 신음한 아랍권에서나 있을 법한 요구가 미국이라는, 그것도 금융자본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월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가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월가의 금융인들이 수백만 달러씩 보너스를 챙기는 부도덕함에 젊은이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50%의 자본을 상위 1%로의 소수가 독점하고, 99% 결정권을 상위 1%가 갖는 모순된 경제상황이 빚어낸 결과다. 극소수의 부유층에 강한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월가가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강한 인상 때문이다.

미국이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 깊은 반감이 있다면 한국은 재벌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돈만 되면 무분별하게 뛰어드는 재벌의 모습은 탐욕스럽게 비친 지 오래다. 자기들만의 리그처럼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모습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 맞고 온 아들을 위해 조폭을 동원해 아버지가 대신 때려주는 재벌 총수도 있고, 맷값을 던져 주고 야구 방망이로 때린 재벌 2세도 있었다.

들끓은 여론이 잠잠해지자 “피해자와 합의했고,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점을 고려했다”는 이유로 재판부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곧 그는 석방됐다. 재벌이 망하면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겁을 주고 학생들은 재벌이 운영하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고 고시원을 전전해야 하는 형편이다.

축적된 자본의 힘은 이제는 정치권이 통제하기엔 그 한도를 넘었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달리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 구조가 깨지면 언제든 경제적 불황은 찾아와 실직자들로 넘쳐나고 목숨을 끊는 극단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돈의 흐름만 쫓고 수천만의 미국 시민과 세계인들이 미국 금융정책 실패로 허공에 돈을 날려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오히려 공적자금을 보너스로 받아 챙기는 모습은 소수의 부도덕을 탓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높다.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이러한 경제적 갈등은 언제든 분출할 수 있는 활화산처럼 내부 속에 응집된 잠재된 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구호를 공허한 메아리로 흘려보내는 정치권과,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문제의 해결은커녕 면담조차 거부하는 청주시장의 모습은 왜곡된 현실이다. 

몇몇의 재벌이 만든 일자리가 우리 경제를 움직이는 현실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두독점세력이 좌지우지하는 경제가 아니라, 소수의 정치적 관료가 쥐락펴락하는 경제가 아니라 국민 다수가 합의를 통해 도출해 낸 정책을 두고 각자의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의 가치를 느끼며 살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제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라는 말초적인 행복이 아닌 상식이 통하고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로의 의식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이 밀집된 곳에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불균형을 수반한다. 자본을 나누는 것이 미덕이며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이제 더는 미국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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