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무자비한 폭력이 부른 참극
부친 무자비한 폭력이 부른 참극
  • 배훈식기자
  • 승인 2011.09.08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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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에 얽힌 그때 그 사건

2005년 진천 부친살해 암매장

2년만에 찾아와 "엄마 찾아와라" 협박

친구 2명과 살해 … 주민들 오히려 동정

2007년 진천 형제간 살인미수 사건을 비롯해 2009년 충주 이웃주민 살해 사건, 지난해 내수 50대 주부 남편 둔기 살해 사건 등 강력사건들이 이어졌다.

이 중 지난 2005년 추석 연휴에 발생한 진천의 부친 살해 암매장 사건을 되돌아봤다.

지난 2005년 추석 다음날이었던 9월 19일 오후 5시 박모씨(당시 17세·고2)는 진천군 초평면 자신의 집 인근 공터에 아버지의 시신을 묻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묻던 날 박씨의 곁에는 중학교 동창 친구 2명이 함께했다.

박씨의 아버지(당시 53세)는 그날 집을 나간 지 2년여 만에 술에 취한 채 돌아와 "네 엄마 찾아와라"며 박씨를 폭행하고 가재도구를 부수는 등 행패를 부렸다.

함께 있던 친구 2명에게도 "이놈 엄마 안 찾아오면 너희 가족들도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어려서부터 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박씨는 어머니가 돌아오면 또 아버지에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2년여 동안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행복한 순간들이 무참히 깨질 것만 같았다.

결국, 박씨는 집 안에 있던 고무호스로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하고 친구 2명과 함께 시신을 암매장했다.

이날 벌어진 모든 일들은 박씨와 친구 2명만이 기억하는 일로 묻혔다.

이미 지난 2003년 실종 신고된 박씨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찾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늘 그래 왔듯이 박씨는 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았다.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늘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 없이 4년이라는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고교를 졸업한 박씨가 현역병으로 군 복무하던 지난 2009년 4월, 4년 전 추석연휴에 벌어졌던 일들이 온 세상에 알려졌다.

암매장한 아버지의 시신 일부가 드러나자 입대 전 박씨가 유골을 수습해 쌀 포대에 넣어 창고에 둔 것을 이웃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유골의 신원이 실종된 박씨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당시 일병이었던 박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가 2년여 만에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폭행하고 다 죽이겠다고 위협해 순간적으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용하던 농촌마을에서 존속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주민들의 동요가 컸다. 특히 박씨의 어머니와 범행에 가담한 친구 2명의 부모는 식음을 전폐하고 농사일도 하지 못했다.

현장검증이 실시된 지난 2009년 5월 마을 주민 10여명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박씨를 바라봤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박씨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 A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을 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진천경찰서 조대관 경사는 "당시 마을주민들도 다들 박씨를 불쌍하게 여겼다"며 "가정폭력이 부른 참극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를 비롯한 친구 2명 모두 당시 군인 신분으로 군 헌병대에 신병이 인계돼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군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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