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힘
글의 힘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1.08.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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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여기저기 글쓰기가 한창 뜬다. 글쓰기는 정말 중요하다. 글쓰기만 보아도 그 사람 전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글씨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글씨는 못 쓰지만 글이 좋은 사람도 많다. 채점을 할 때 내가 스스로 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발로 써도 좋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퍼온 글보다는 나아도 한참 낫기 때문이다.

글이 글씨가 아니라 글월이라면, 문장에서 드러나는 인격의 크기와 지식의 깊이가 관건일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관리로 등용되기 위한 조건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꼽을 때, '글'(書)이란 역시 글씨가 아니라 문필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몸(身)을 따지면 인권침해라고 할 테고, 말(言)은 면접 때나 문제되는 것이고, 판단력(判)은 관리로서 어느 정도 올라가 정책결정이 필요할 때나 요긴한 것이다. 결국 오늘날에도 필요한 것은 뭐니해도 글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의 시험은 글쓰기를 너무 빼놓았다. 문장 하나로 사람을 뽑는 것이 억울하다고?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e)도 폐기되어야 할 터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가장 이상적인 선발제도로 만국의 칭송을 받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1808년 도입된 이래 어문학(L), 경제사회(ES), 과학수학(S), 기술(T) 분야에 걸쳐 60만 명의 고교생이 시험을 본다. 수학은 네 문제 정도로 나오기도 하는데, 질문내용은 우리의 대학에서도 내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꿈은 있어야 하는가?'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사랑은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사람에 대한 질문도 있지만, 인문학이나 과학 자체에 대한 질문도 있다.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역사가는 객관적인가?'

'사람이 한 가지 말만 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예술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권력남용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주는가'

'무엇을 비인간적 행위라고 하는가?'

이쯤 되면 나도 몇 시간은 헤매야 그런대로 답안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의 우리 과거시험도 이렇게 질문했다. 그리고 과거야말로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전대미문의 제도였다. 바칼로레아가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 집권 당시 시작된 것을 기억하자. 이 시험만 통과하면 고등사범이라고 불리는 그랑제꼴을 제외하고는 어느 대학에도 지원해도 되고 원칙적으로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내가 이런 제도로 우리 학생을 뽑겠다면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사상과 가치관을 드러내야 하는 관리직 공무원을 뽑는 경우라면 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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