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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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규 시인
  • 승인 2006.06.0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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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 백두산 해맞이
백두산에 찬란한 해가 떠오른다.

조국의 수 천년 역사 위에 자랑스럽게 떠오른다.

오늘 남녘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부푼 기대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백두산의 첫 아침을 맞이한다.

북녘의 작가들도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설레는 눈을 빛내며 백두산에 뜨는 해를 바라보며 한핏줄 한민족의 형제작가들이 백두산에서 하나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지난 100년 동안 고난의 세월을 힘겹게 살아왔다.

때로는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으로 남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러다가 또 다른 외세의 강압으로 분단과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

이제 이런 비극의 시대를 끝내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통일을 열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지난 역사의 위대한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은 백의민족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실천으로 보다 가깝게 통일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외세의 간섭과 폭력으로부터 민족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싸워왔다.

홍석중 소설가는 밝게 웃으며 “충청도 요것들, 충청도 요것들”하며 좋아한다.

괴산읍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온 남쪽의 시인 도종환, 평론가 김승환, 그리고 필자와 민족문학의 최고봉 ‘임꺽정’작가 ‘벽초 홍명희 평전’, 홍명희의 생애와 사상을 쓴 서울 상명여대 강용주 교수는 특별한 손님이었다.

그는 우리가 백두산과 묘향산을 둘러보고 평양을 떠나 올 때까지 우리 일행을 친형제처럼 아껴주고 돌봐주었다.

황석영 작가와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북한소설 ‘황진이’,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 사랑도 이 만큼이면 단순히 남녘에서 환영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북의 개방을 염두에 둔 소설이라고 평을 했지만, 신분과 차별을 넘어선 남녀간의 사랑이야말로 이 만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획일적인 혁명문학에서 벗어나 드디어 이념성을 탈피한 최초의 창작물로 대하역사소설이라 할만하다.

’ 이렇게 남쪽의 언론들은 말했다.

홍석중은 1941년 9월 23일 출생, 1957년부터 1964년까지 조선인민군 해군에서 복무하고 1969년 김일성 종합대학 어문학부 졸업하고 1970년 ‘붉은 꽃송이’발표, 1979년부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창작활동을 시작하여 ‘높새바람’외 여러 편의 작품들을 썼다.

장편소설 ‘황진이’문학예술출판사 2002년에 발행된 소설이다.

북쪽작가가 남쪽의 문학상을 처음 받은 소설이 ‘황진이’라는 소설이다.

19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백낙청 교수로부터 1천만원의 많은 상금과 부상을 받았다.

남북한의 문학을 한데 어우르는 분단 반세기만의 충격과 쾌거였다.

이 한 권의 소설이 모국어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백두산의 해맞이는 둥근 달과 해가 만나는 장군봉 아래서 통일문학의 해돋이 행사를 가졌다.

해가 뜰 때는 모두가 모여 만세를 불렀다.

통일문학만세! 조국통일만세! 모두가 함박 웃음을 웃는다.

북쪽 땅을 밟고 백두산에 처음 오른 남측의 작가들은 장엄한 해맞이 앞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하는 탄성들이 흘러나왔다.

북측 오영재 시인과 남측의 이기형 시인이 여기서 만났다.

오영재 시인은 남쪽이 고향이고 이기형 시인은 함경남도 함주가 고향이다.

이 기막힌 사연을 보면 오영재 시인은 강진에 부모 형제가 살고 있고, 이기형 시인의 아내와 자식들이 평양에 살고 있다하니 남과 북의 기구한 인연이 백두산에서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 나도 울었다.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울었다.

주위 사람들은 어리둥절 왜 우는지 사연을 몰랐다.

나중에서야 이 기막힌 사연이 전달되었다.

나중에 이기형 시인은 백두산을 내려와 서울로 돌아올 때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만났어. 딸을 만났어.” “아니 선생님 정말 딸을 만나셨어요.” 89세의 노인은 이를 들어내며 환하게 웃었다.

오영재 시인은 나에게 말했다.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내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만난 것이 아니냐고 했다.

통일을 약속하는 의미에서 그와 난 백두산에서 큰절을 나누었다.

시인은 평양에 가서 또 만나자고 했다.

홍석중 소설가와 백두산에서 길고도 짧은 인터뷰 할아버지 고향에 꼭 한 번 갈 것이라고 오른손 주먹을 쥐고 “나는 꼭 간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두산을 오르고 백두산 지구 삼지연과 백두밀영을 돌아 본 추억은 잊을 수 없다.

홍석중은 나에게 말했다.

“창규, 나의 소설이 정말 재미있더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진이’그 소설을 남쪽의 책사랑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읽었다고 말했더니 더 없이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백두산에서 분단시대 통일 해맞이는 김남주의 시 ‘조국은 하나다’가 그 모든 것을 대변해 주었다.

백두산을 내려오며 이깔나무 숲의 장엄함을 보았고, 온갖꽃들이 춤추는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노래하랴. 묘향산을 가기 위해 ‘분단시대’문학동인들인 배창환, 도종환, 김용락, 김승환, 김창규 다섯 명은 백두산을 내려오며 분단을 끝장내고 말자고 마음속 굳게 통일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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