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인가
악법도 법인가
  • 정세근 <교수>
  • 승인 2011.07.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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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교수>

내가 수업시간에 철학연구자로서 사과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소크라테스의 악법 이야기다.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학생들에게 정말 고개 숙여 사과한다. 철학의 오용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예라고 하면서. 한마디로,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악법도 법이다'라고."는 거짓이다.

나는 그 거짓을 사과하면서 철학의 엄정함을 설명한다. 전문가들 가운데 누구도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분명히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적은 제자 플라톤의 글이나 그 이후 누구의 글에서도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런 거짓을 교과서에서 읽고 외워야 했는가? 그것도 '윤리' 교과서에서 말이다.

상황은 이렇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도망갈 수 있었다. 제자들이 도피의 방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탈출하지 않고 그냥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왜 내 터전을 떠나느냐는 심정이었고, 그것이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키는 대단원의 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릇된 판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수용했다. 여기까지는 옳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렇게 발전했을 것이다.

먼저 사실에 대한 설명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을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였다. 왜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가능하다. 늙어 고향을 떠나기 싫었다, 자기의 신념을 보여주고 싶었다, 등등. 그러나 그것이 곧 소크라테스가 법도 법이라고 생각했다는 주장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진행된다.

①소크라테스는 악법을 받아들였다.

②소크라테스는 '악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③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생각했다.

④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소크라테스의 이 엉터리 말이 교과서에 실리게 된 석연치 않은 배경이다. 때는 유신시대, 계속되는 긴급조치 몇 호 몇 호로 강권통치가 살벌해질 때였다. 과정은 이럴 것이다.

어느 교수인지 관료인지는 몰라도 충성을 다하고 싶었다. 소크라테스를 통해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가 비록 나쁘지만 그래도 법이니 받아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악법을 받아들였다"(①)라고 교과서에 썼다. 그것으로 만족스럽지 않자, 한걸음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는 '악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②)라고 쓴다. 충성의 강도가 좀 더 높아지면서 좀 더 고친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생각했다."(③) 드디어 막바지에 이른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그게 그거니 '생각했다'를 '말했다'로 바꾼다. 마침내 윤리교과서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④)라고 적힌다.

황당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철학을 오도한 교수인지 관료를 꼭 찾아내고 싶다. 그러나 철권의 역사는 나에게 그런 작업을 완수해낼 수 있게 내버려둘 정도로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결심한다. 좋은 말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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