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시험
참 나쁜 시험
  • 박을석 <전교조 진천지회장>
  • 승인 2011.07.1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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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박을석 <전교조 진천지회장>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는 오늘은 교과부 말로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국민이 이르는 말로는 '일제고사'를 치르는 날이다.

필자더러 전국의 초6, 중3, 고2 학생들 전원이 치르는 이 시험의 이름을 붙여보라면 '참 나쁜 시험'이라고 간단히 말하겠다. 비록 어느 정치인의 표현법과 비슷하지만, 나로선 달리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

교과부는 언필칭 전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수준을 국가 수준에서 알아보고 성적이 낙후한 지역과 기초학습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지원하려고 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정책 목표라면 굳이 전국의 모든 학교를 통제하여 같은 날, 같은 과목으로 시험을 치러야 할 이유가 없다.

광역시와 도, 도시와 농촌 학교를 선별하여 표집 평가를 한대도 충분히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사실 교과부의 정책 목표는 다른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소위 경쟁을 통한 학력 제고, 줄 세우기를 통한 교육청과 학교 통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작년부터 교과부는 이 시험 결과를 시도교육청 평가에 반영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학교평가에도 이용할 계획이다. 또 학교별 점수 결과는 교사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학교별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교과부는 시험 성적 하나로 교사와 학교, 교육청까지 한 줄로 세울 수 있으니 꾀나 유용한(?) 칼자루를 쥔 셈이다.

학생이든 교사든, 학교든 교육청이든 그 누구도 이 시험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로지 시험 등수를 올리려고, 시험 결과 주어지는 돈과 명예(?)를 위해 미친 듯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시험에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과 상품권이 걸렸고, 교사들에게는 스키 캠프 이용권과 성과급이 걸렸고, 지역교육청과 도교육청에는 등수라는 명예와 교과부의 교육청 평가 지원금이 걸렸다. 이러한 작금의 모습을 보고서도 이 시험을 '교육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과 등수 앞에서, 하루 13교시 수업, 주말 수업 등 휴식 박탈의 인권침해도, 문제 풀이를 위해 국가 교육과정의 파행 운영도, 휴짓조각으로 처박힌 창의 인성교육도, 온갖 부정행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야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현 정부가 그리도 노래 불렀던 영국의 일제고사가 폐지되고, 미국의 낙오학생 방지법에 의한 평가도 이미 정책 선회를 하는 마당에 우리는 언제까지 이 나쁜 시험을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가. 실로 절망스럽다.

그러나 이 절망의 교육계에 아직도 희망이 있다면, 자라나는 학생들이 모두 이 시험을 일러 '참 나쁜 시험'이라고 몸소 깨닫는다는 것이고, 점점 많은 학부모가 시험거부에 나선다는 것이고, 사법부에서 일제고사 사유의 정직 및 해임 징계에 대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고, 거듭하는 징계 위협에도 교사들이 거부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고, 진보 진영 교육감들이 시험 대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의 씨앗이 쌓이고 쌓인다면 머지않아 이 나쁜 시험도 폐절될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에 온몸으로 괴로워해야 할 아이들이 다만 안쓰러울 뿐이다.

오늘, 시험지 앞에서 신음할 아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 나쁜 시험의 폐절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어떤 이들은 물을 것이다. '너희의 대안은 뭐냐' 일제고사의 대안은 '일제고사의 폐지'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일제고사 양산하는 수많은 문제를. 답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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