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악마의 맷돌
일제고사, 악마의 맷돌
  • 허건행 <전교조충북지부 수석부지부장>
  • 승인 2011.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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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허건행 <전교조충북지부 수석부지부장>

몇 년째다. 일제고사의 망령이 학교 현장을 뒤덮고 있다. 질긴 생명력으로 교육의 본질을 갉아먹고 있다. 그 강도가 더욱더 강해졌다. 좀비의 생명력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7월 12일이다. 현재로서는 학부모, 학생의 선택권이 일절 부여되지 않은 채 치러질 것이다. 강제적 실시이다.

7.12를 겨냥해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그 과녁에는 교육 마름들의 욕심과 그들이 떠받치는 교육 관료들의 명예욕이 가득하다. 성적에 따른 자본의 차별적 시혜가 개기름처럼 번지르르하다. 학생의 감수성과 영혼, 교사의 자존심과 전문성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교육에 있어서는 안 될 거짓과 위선이 그 배경에 있다. 학부모를 호도하여 그 방패막이로 쓰는 교활함도 있다. 교사를 수치스럽게 하고 스스로 경쟁에 목매게 함으로써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와 학부모에게 돌아가게 한다. 인간이란 계량할 수 없는 우주적 존재를 성적으로 줄 세우고 소중한 교육적 가치를 갈아버린다. 심각하고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뜻과 의지로 일제고사 싸움을 준비하고 맞서야 한다.

일제 고사가 가진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지금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미래의 전망으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적이지 못하다. 과정에서 결과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그렇다.

일제고사를 앞둔 2011년 학교의 모습에서 교육의 총체적 모순을 짚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제고사 등, 교육시장화 정책은 개인에게 무한 책임을 강요한다. 경쟁을 강요하고 경쟁을 통한 차별을 내면화시킨다. 경쟁과 경쟁을 통한 차별이 가지고 오는 파국을 조장한다. 심지어 도모한다. 실제로 그 파국의 모습을 순간순간 일상에서 체험하고 경험한다. 확인한다. 무한경쟁구도 속에서의 메말라가는 정서적 환경, 구성원 간의 갈등 심화 구조, 인권 친화적이지 못한 공간, 비민주적인 학교, 그리고 성적 및 양극화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 등이 많은 청소년, 청년들을 폭력의 세계로, 그리고 자살로 이끈다. 다중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고립된 섬들이 늘어간다.

현재 중고등학생들은 단지 대학교 입시에만 그 고민이 제한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포함하여 그 고민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소위 귀족학교에서 똥통 학교까지 서열화되어가는 고등학교, SKY로 상징되는 서열화된 대학, 비싼 대학등록금, 졸업 후 고용불안, 비정규직 문제, 물가상승 등은 어린 학생들에게도 무거운 현실의 무게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경쟁과 차별을 내면화하는 일제고사식 시장교육정책을 모태로 이어지는 학벌구조사회, 승자독식사회의 시커먼 아가리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어린 아동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의 모습은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외면될 일이 아니다. 바로 눈앞에서, 감각과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제고사는 반교육적인 먹이사슬교육이다. 거짓을 은밀하게 강제하는 양아치 교육정책이다. 또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다 갈아 먹어 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다. 일제고사에 교육이 없고 사람이 없는 이유다.

충북교육청은 지금까지의 일제고사와 관련 위선적인 행태에 대해 사과하고 당장 학교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이끄는 학교에 대해 교육과정 정상화를 지시하고 본보기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7.12 일제고사에 학생,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일제고사에 응시하지 않는 학생에게 대체 학습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각 단위학교에 지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교사나 학교에 대한 차등성과급과 연결된 일제고사는 그 정도가 가히 핵폭탄에 버금갈 만큼 비교육적이며 폭력적이다. 그런데 충북교육청은 전국 1등이니 3연패 하면서 우쭐하니, 어른으로, 사람으로 부끄럽다. 성찰과 반성은 어디에 묻어 두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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