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인쇄문화 위상높일 근거"
"천년고도·인쇄문화 위상높일 근거"
  • 한인섭 기자
  • 승인 2011.05.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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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발원이 지닌 의미·배경
전란 수습단계·국토 요충지 … 연등회 소문 전파 빨라

초조대장경 청주 발원은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직지와 함께 1000년 고도 청주 정체성과 인쇄문화 메카라는 위상을 한층 높일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성수 교수는 "금속활자 직지 외에 최초 각판한 목판 대장경도 발원지가 청주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300여년 후 직지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대장경 발원지 규명은 역사 교과서와 문화사 분야 교과서 내용 수정을 가져 올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고려사절요·고려사, 이규보의 기고문을 연구해 발원지가 청주라는 점에 대해 장기간 규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청주가 직지의 고장, 교육문화의 도시라는 점을 입증할, 학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실증적 유물로 남은 것은 아니지만, 지역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황 실장은 이어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면 학술회의 등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현종이 최대 규모 국가적 프로젝트였던 초조대장경을 왜 청주행궁에서 발원했을까. 김성수 교수는 청주가 사통팔달의 요지여서 백성들에게 미칠 정치적 효과를 고려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청주에 머물 무렵 전란이 어느 정도 평정된 시점이었던 것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연등회를 개최한 청주는 공교롭게 삼국시대와 후삼국 시대에 삼국의 접경지이면서, 고려시대 중원지역 교통의 십자로에 위치한 요지인 동시에 문화적 거점이었다"며 "전라, 경상, 경기, 강원과의 왕래가 쉽고, 소문이 팔방으로 신속히 전파될 수 있는 교통요충지에서 연등회를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전쟁 막바지 개경 환도를 앞둔 현종은 민족적 대단결과 민심수습을 도모할 수 있는 수습책을 내놔야 했던 상황이었다"며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건이 맞아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려 현종이 전남 나주까지 피란길에 올랐다 청주행궁에 머물렀던 1011년 2월은 전란이 차차 안정을 찾는 국면이어서 가능했다. 1011년 1월, 2월은 고려군이 압록강 지역에서 선전을 거듭해 거란군이 후퇴했던 시점이었다. 현종은 이 무렵 전남 나주에서 전주, 공주를 거쳐 2월 13일부터 23일까지 청주에 머물렀다.

김 교수는 "양국 간의 전쟁 종식과 대장경 판각을 통한 문화적 교류를 갖자는 일종의 평화선언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전쟁은 2개월 뒤 종료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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