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없고 후보만 있는 선거
당은 없고 후보만 있는 선거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04.18 2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당을 보지 말고 인물을 보고 찍어 달라." 선거 철이면 유권자들이 심심찮게 들어온 말이다. 태생적인 이유로, 아니면 특정 이슈로 인해 소속정당이 설 자리를 잃은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을 꼬드기는 말이다. 소속정당 따질 것도 없이 자타공인받는 출중한 인물이라면 굳이 정당 공천받을 일 뭐 있는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되지. 스스로 소속정당을 부정하는 구차한 언사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잖은가. 그러나 말로는 인물만 보라면서도 당적은 꼭 움켜쥐고 놓지 못한다. 정당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치르는 선거의 강점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 철 출마자가 소속정당을 일시적으로 부정하는 행태는 점차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나홀로' 전략이다. 지난해 7.28 재보선에서 서울 은평을 선거구에 출마했던 이재오 특임장관이 재미를 봤다. "날 살리려거든 한강을 넘어오지 말라." 그는 총력 지원에 나서겠다는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류하고 홀로 선거를 치렀다.

선거기간 내내 당과 거리를 둔 채 '단기필마'로 유권자를 설복한 끝에 장담한 대로 여의도로 생환하는 데 성공했다. 언론 접근까지 차단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 야당의 '정권심판론'과 세간에 부정적인 실세 이미지를 희석시킨 것이 승인으로 꼽혔다.

이 장관의 성공담에 고무돼서인지 이번 4.27 재보선에서도 김해을에 출마한 김태호, 분당을의 강재섭 후보가 '나홀로'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 김 후보는 중앙당의 공천장도 김해가 아닌 창원에서 받았다. 공천장 전달을 위한 당 지도부의 선거구 방문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후에도 그는 중앙당 차원의 어떠한 현지 지원도 사절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성이자, 영남내 야당 교두보인 지역구에 여당 인사들이 모여들 경우 야권의 결집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분당을에 출마한 강재섭 후보도 당 차원의 공식 지원을 거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의 대규모 지원유세가 펼쳐질 경우 '정권심판론'으로 선거를 몰고 가려는 민주당의 전략에 말려들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민심과 멀어져 가는 당의 궁색한 처지도 작용했을 것이다.

강 후보와 맞서는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도 우군의 도움을 고사하고 단기로 지역구를 누빈다. 한나라당 텃밭이자 대표적 보수지역인 이곳에서 야당 인사들이 설칠 경우 보수 결속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서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손 대표의 현수막 어디에도 (민주당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볼 수 없다. 전부 하얀색"이라고 꼬집었다. 여야 두 후보가 같은 작전을 동원했지만 속내는 제각각인 셈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현지상황을 분석하고 지역 건의를 받아 선택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명색이 집권당이 두 손을 놓고 구경만 하는 것이 심사숙고 끝에 나온 선거전략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기이하고 옹색하다. 한술 더 떠 이 작전이 주효해 김해에서는 상대후보와의 격차를 좁혀가 조만간 역전하게 될 것이라는 자평을 늘어놓는다. 실제로 당이 배제된 선거구도가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언설은 한나라당 이름으로는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고백으로 들릴 뿐이다.

소속정당에 비우호적인 지역구 정서에 굴복하고 출신을 부정하는 후보자들의 행태도 옹색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더욱이 후보자들 대부분이 정당 대표나 총리 후보까지 지냈던 중량급 정치인이다. 누구보다도 정당정치의 가치와 본령을 지켜나가야 할 인물들이다. 선거는 각 정당이 정강과 정책에 부합하는 후보를 출마시켜 정당의 이름으로 국민의 선택과 심판을 받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출마자가 장소와 시기에 따라 당과의 거리를 달리하는 풍토는 아무리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리는 세상이 됐다 하더라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