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도 안전지대 아니었다
조선시대도 안전지대 아니었다
  • 한인섭 기자
  • 승인 2011.03.1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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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본 충청권 지진
선조 27년 홍주성서 발생 충북까지 영향

현대 관측기법 분석… 규모 5.5이상 추측

피해관리 등 기록… 국가차원대비 흔적도

충청권은 지진 안전지대인가.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니다.

역사 속 기록을 보면 1500~1700년 사이 충남 홍성과 청주, 문의, 회인 등 충청 내륙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심심찮게 발견돼 이미 조선시대에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1594년) 6월 기록에는 충남 홍주성(현 홍성) 일대에서 발생한 지진이 충북지역까지 영향을 미쳐 하늘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有聲雨雷 地上之物 莫不搖動 初疑天崩)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실록에는 또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나고 지상의 물건이 요동했다'고 표현돼 있다.

특히 홍주성은 동문 성벽 3칸이 무너졌다는 내용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기록돼 있다.

충북지역은 홍주성 지진 영향으로 지면의 물이 흔들리고, 땅이 꺼질 정도였다고 쓰여있다. 당시 지진은 경상도 고령, 초계, 전북 전주, 김제, 고부, 만경 일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선조 27년 발생한 홍주성 지진 규모를 현대적 관측 기법으로 분석할 경우 강도 5.5 이상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인조 11년 1633년 6월 2일에도 홍주 땅에 지진이 나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고 기록돼 빈발했던 지역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숙종 12년에는 청주에서 집이 들릴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록에는 1686년 4월 2일 문의 등 16개 읍에서 발생해 번개치는 소리와 함께 집들이 번쩍 들리는 것처럼 흔들렸다고 기록돼 상당한 규모였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충주에서는 담벼락이 무너진 일도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11년(1670년) 8월 기록에는 충주에서 민가의 벽이 훼손되고, 담벼락이 무너지며 번개소리가 났다고 기록돼 있다.

숙종 6년, 7년에는 청주를 비롯한 공청도(公淸道·현 충남북) 전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 1680년(숙종 6년) 6월에 청주에서 발생한 데 이어 1681년(숙종 7년) 4월로 이어졌다. 당시 기록을 종합하면 숙종 7년 지진은 강원도 동해안에서 발생해 전국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록에는 작은 규모의 지진도 기록돼 있다.

1503년 1월 14일(연산 9년) 청주와 옥천, 문의, 회인, 보은, 청안, 연풍, 음성, 진천, 충남 연기, 전의지역에서 집이 흔들릴 정도로 발생했다.

삼국사기에는 고려 목종 4년(1001년) 중원부 장연현(현 괴산군 연풍면)에서 지진이 발생해 전답 3결이 함몰됐다(水田三結陷爲池)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과학-지학(地學)편에 실린 지진 기록을 분석하면 1500년 이후 내륙지역에서 발생했던 지진은 1600~1700년 사이 활발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발생 지점과 파장이 미친 방향, 피해정도, 지방관리들의 보고와 지시내용 등 상황별 대응조치도 기록돼 국가 차원에서도 지진에 대비한 노력과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경재복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56)는 "요즘 발생한 한반도 지진은 성곽이나 가옥이 무너질 정도가 아니었는데 사망 기록까지 확인된다"며 "한반도와 충청권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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