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 남의 탓!
내 탓! 남의 탓!
  • 김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02.22 2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목련
김송순 <동화작가>

"글쎄, 내가 참 나빴다니깐. 그때 그걸 살려 줬어야지. 그걸 치료해 줬어야지. 어쩌자고, 어쩌자고. 모든 게 다 내 탓이야! 내가 잘못한 탓이야!"

할머니께서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이더니만 이내 어깨를 들먹이신다. 그러고 나서 금세 눈물방울이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 위에 떨어졌다. 내가 할머니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보는 두 번째 눈물이다.

난 황급히 할머니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소리쳤다.

"아녜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할머니가 나빠서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그 시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요."

하지만 할머니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아마 오늘도 저번처럼 한참 동안 우실 것만 같다. 그래야만 할머니 가슴이 시원해질 것이다. 난 할머니 손을 더욱 꼭 잡으며 지난번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셨다고 한다. 그 강아지는 오늘날처럼 방 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이 아니고, 마루 밑에서 살며 식구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는 잡종 개였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동네 이리저리를 돌아다니다가 다리 하나를 부러트려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강아지가 귀엽기는 했지만, 바쁜 농사철에 강아지의 다친 다리를 치료해 줄 엄두가 나지 않아 개고기를 좋아하는 이웃 동네 사람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잊고 있었는데 다음날 새벽녘에 사립문 긁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그래서 밖에 나가보니 이웃 동네 사람에게 준 그 개가 피를 흘리며 대문 앞에 서 있더란다.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먼 길을 걸어온 것이다. 기진맥진한 강아지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지만, 할머니는 매몰차게 그 강아지를 이웃 동네 사람에게 다시 보냈다고 한다.

그때가 벌써 40년도 훨씬 지난 일인데, 그 일은 착한 할머니를 계속 따라다녔나 보다. 그래서 여든이 다 되고 있는 할머니를 지금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할머니께서는 자손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할머니 몸이 편찮으셔도 그 일 때문이라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내 탓이여! 살려달라고 찾아온 걸 내팽개쳐서 이렇게 내가 벌을 받고 있는 거여."

할머니를 만날 때면 '탓'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탓'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문장의 어디에 붙여 놓아도 부정적인 현상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내 탓'보다는 '남의 탓'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세상 여기저기에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싸움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남의 탓'보다 '내 탓'을 돌아보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산다면 지금보다 시비도 적고 싸움도 적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남의 탓'은 묻어 두고 '내 탓'을 돌아보며 살자고 말해야겠지만, 오늘 난 주름진 얼굴 사이로 흘러내리는 할머니의 눈물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열심히 단어들을 찾아본다.

'할머니에게 어떤 말로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을 찾아보라고 말씀드리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