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연습
이별연습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1.2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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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심억수 <시인>

한국 여성문학의 거장 박경리 선생님에 이어 박완서 선생님께서 영면에 드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분의 작품은 깊은 고통의 체험에서 나온 삶의 이야기이기에 더 많이 공감하였다. 그래서 더 애통하다. 그분은 고통과 화해하는 삶을 글을 통하여 보여 주셨기에 늘 존경했었다. 작품 속에 녹아있는 따뜻하고 진솔하며 치열했던 그분의 삶을 들여다보며 문학의 진정성을 느꼈다. 문학의 정직성을 일깨워준 어른이시기에 더욱 안타깝다.

지금까지 살면서 꽤 많은 사람이 나의 곁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삶을 끝냈으며,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병마와 처절한 싸움 끝에 세상을 등진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니 떠난 사람들과 이별의 인사를 나누거나 화해를 하지 못하고 보낸 것 같다. 내 곁의 사람이 떠나고 나면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좀 더 다정할 걸, 좀 더 따뜻하게 대할 걸 하고 후회를 한다.

요즈음 아버님께서 이별을 준비하고 계신다. 당당하고 거침이 없으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늘 당당하실 줄 알았다. 자식 위에 군림하시며 당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시고 사신 분이다. 어머님도 늘 아버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보지 못하셨다. 아버지와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늘 존재했었고 나는 그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되도록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맥없이 거실 한가운데 쓰러지셨다는 전갈을 받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계신지 여러 달이 지나고 이제는 음식을 목으로 넘기시지도 못하신다. 말씀도 잊으셨는지 애절한 눈빛만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렇게 높게만 느꼈던,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벽이 허물어졌다. 앙상하고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이 훤하게 보인다. 이제는 화해의 손을 내밀고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고 눈물을 닦아 드려야 하는데 두려움이 앞선다. 아버지! 하고 따뜻하게 불러 드리지도 못했다. 또한, 아버지께 "사랑한다 내 아들아!"하는 말도 듣지 못했는데 말이다. 보내드리기에 앞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니 아직은 보내 드리기 싫어서 아버지와의 화해를 외면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진정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니까 나에게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 밑바닥에 늘 있었나 보다. 돌이켜보니 나도 아버지처럼 살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께 받은 것이 무척 많다. 그런데 나는 왜 아버지께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늘 말썽만 피우던 철없던 시절에 나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신 분은 분명히 아버지셨다. 그러나 엄하게 다그치신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뒷면에 감추어진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을 뿐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버지의 애절한 눈빛은 나를 향한 믿음의 표현임도 이제야 알겠다. 자꾸 입을 움직여 무슨 말씀인가 하시려는 말씀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 제가 다 하겠습니다. 어머니도 걱정하지 마세요. 동생들도 잘 챙기겠습니다. 이제 마음 놓으시고 얼른 일어나세요. 따뜻한 날 아버지 모시고 꽃구경 가고 싶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제발 일어나세요. 아버지!"하고 혼자 연습을 해 본다. 자꾸 불안해지는 마음에 오늘도 화해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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