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보았는가 저들의 무지를
그대 보았는가 저들의 무지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1.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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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아파트 주변의 경관을 그려놓은 아름다운 그림을 봅니다. 화보처럼 예쁜 화단과 잘 가꾸어진 조경 속의 나무 숲, 그리고 주변을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림에서 본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살아야지' 하며 미래의 부부상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린 모르는 게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완숙미를 풍기는 노부부의 지난 삶은 다투고, 의심하고 서로를 깎아 빈 곳을 채워 현재에 이른 긴 시간입니다. 그저 아름답고 정돈된 모습이 전부라는 생각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요즘 카탈로그에 나오는 풍경을 만들겠다고 야단입니다. 철마다 꽃이 피었다 지고, 비단잉어가 노니는 정원을 만들고, 옆길은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국민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겠다고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우린 산과 들로 나갑니다. 인공적으로 잘 가꾸어진 화단보다는 듬성듬성 자리 잡고 핀 진달래가 아름답고, 한파를 이겨낸 냉이와 달래의 향이 짙습니다. 집 앞에 놓인 조경을 자연이라 보지 않습니다.

굽이굽이 감돌다 고이고, 다시 흐르는 강줄기와 백사장을 보고 성긴 듯 무리 진 수풀을 보기 위해 물가를 찾습니다. 자연은 시간의 역사입니다. 시간이 빚고 다듬어 조악해 보이지만, 그곳엔 생명이 살아 있습니다. 단양의 쑥부쟁이는 그곳에 살기 위해 긴 시간을 싸워 정착한 그들만의 터전입니다. 옮겨서 심어놓는다면 문제가 없다는 사고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삶의 긴 여정입니다. 시간을 박제시켜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부추기면 안 됩니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위기와 고민을 극복한 과정이 우리에겐 더 필요합니다. 강물이 썩으면 살려야 합니다.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강바닥을 준설하고 시멘트로 보를 만들고 강변을 아파트 화단 만들듯 한다는 발상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며 강으로 유입되는 오염원을 줄이고 홍수로 인한 범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하면 됩니다. 치수라는 사고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물길은 정치논리로 보면 안 됩니다. 물길을 다스린다는 발상은 자연의 역사와 어긋나는 것입니다.

수초를 집으로 삼아 모여든 물고기와 그를 먹기 위해 찾아드는 새들의 삶을 우린 지켜 주어야 합니다. 의식의 성숙이란 물질문명이 이룬 편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삶을 존중해 주고 그들 속에 내가 있음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선진국을 지향하는 국민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독일이 부러운 것은 일인당 개인소득이 높은 것이 아니라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철저하게 지킨 그린벨트입니다. 현재의 선진국은 조경으로 만든 인공 숲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두고 보며 가꾸는 아름다운 마음씨입니다. 청계천을 복원한 것이 잘한 것이 아니라 계천을 복개해 도로를 만든 우리의 무지가 더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빛 한 줄기, 바람 한 줌 허허롭게 지나가는 곳입니다. 울타리와 높다란 벽이 없어 아름다운 것 또한 산과 들입니다. 나름의 이유와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 무심한 논두렁에도 살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을 옮겨 놓은 화단에 깊은 생명의 흐름은 없습니다. 땅값을 높이려는 무한한 욕심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강줄기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도 감출 줄 모르는 자연 앞에 얼굴이 부끄럽게 달아오릅니다.

새벽으로 치닫는 시간, 거친 기계음에 달아나는 새와 물고기, 작은 곤충들의 가엾은 모습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우리가 멈추게 해야 합니다. 우린 그들의 터전을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제 자연 앞에 우린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울음 속으로 삼키며 참아온 자연 앞에 참회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갖고 사는 것이 몹시 부끄러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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