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민 기자
  • 승인 2011.01.12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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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이 영 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有心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따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字로 썼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 주고도 제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 겨울 숲에 들어보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본질만 남아 확연해지는 세상이 있다. 생명의 봄과 초록의 여름, 결실의 가을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온전 한 숲이 되는 나무들이 있다. 뿌리를 닮은 나뭇가지, 그 무수한 손아귀들이 시린 허공을 단단하게 끌어안고 길을 내는. 고요를 통과하는 우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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