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갈굴정(臨渴掘井)
임갈굴정(臨渴掘井)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2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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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의 기업채근담
송재용 <작가>

임갈굴정(臨渴掘井)은 목이 말라서야 서둘러 우물을 판다는 말이다. 이는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 허둥대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뜻도 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노(魯)나라 소공이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 제(劑)나라로 피신하였다. 소공은 자존심을 버리고 제나라 임금 경공에게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경공은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을 소공에게 물어보았다.

소공, 어찌 하다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되었소?"

내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부족하여 충성스러운 부하를 두지 못하였고, 고언을 하는 충신을 멀리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배들만 곁에 두었다가 이런 꼴을 당하였습니다."

소공이 자신의 무능을 솔직히 털어놓고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였다. 그러자 제나라 임금 경공은 유능한 재상인 안영에게 소공을 다시 노나라에 돌아가서 살도록 도와주라고 지시를 했다. 그러자 안영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반대했다. 그러자 임금이 그 이유를 물었다. 안영은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어리석은 자는 후회를 잘하고, 못난 사람은 자신이 현명하다고 자만에 빠지기 쉽지요. 따라서 물에 빠진 사람은 물길을 미리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길을 잃은 자는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뒤에야 물길을 찾고, 길을 잃은 뒤에 길을 묻는 것은 마치 전쟁이 터지고 나서 병장기를 만들고, 음식을 먹다가 목이 마르기 시작하자 우물을 파는 것과 같사옵니다."

가을걷이를 다 끝낸 어느 날 머슴 봉팔이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집 뒤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홍시를 장대로 따고 있었다. 주인 황 영감은 봉팔이가 하는 짓이 눈에 거슬려 대청으로 불러들였다.

야, 이놈아, 농사를 끝냈다고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홍시나 따고,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물 데어 불알 때나 씻어라."

황 영감은 메주로 개 패듯이 봉팔이를 꾸짖었다.

영감님 드리려고 홍시를 따는 겁니다."

홍시 안 먹었다고 죽은 놈 없으니 내일부터 신작로 옆에 있는 논에 방죽이나 파란 말이다."

아니, 작년 겨울에 산 밑에 있는 논에 방죽을 다섯 개나 팠는데 가뭄도 잘 안 드는 논에 또 방죽을 파라니 너무 부려먹은 거 아닌가요?"

봉팔이는 입을 씰룩거리며 입바른 말을 하였다. 그러자 황 영감은 목소리를 낮추어 방죽을 파라고 하는 이유를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다.

봉팔아, 지난 여름 달포 넘게 비가 안 와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벼가 타 죽은 거 봤지?"

예!"

벼가 타들어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허둥대며 방죽을 팠지만 물이 안 나와 농사를 망친 것도 알지?"

하지만 우리 논은 방죽에 고여 있는 물을 대주어 벼가 멀쩡했지요."

봉팔아! 그러면 한 가지 더 물어보자. 농사를 잘 지어 해마다 새경을 올려 받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새경을 매년 똑같이 받는 게 좋으냐?"

그거야 매년 새경을 올려 받는 게 백 배 낫지요."

내가 미리미리 방죽을 파놓으라는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

영감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봉팔이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황 영감은 봉팔이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봉팔아, 농사를 짓느라고 한 해 동안 고생했으니 새경으로 쌀 세 가마니를 더 얹어 주마."

그럼 올겨울에는 방죽을 세 개 더 파겠습니다요."

봉팔이는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황 영감의 선물에 화답(和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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