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10가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10가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2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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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조영의 <수필가>

조카 결혼식 날이다. 결혼하고 처음 조카를 봤을 때 초등학생이었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일 년에 한두 번 가족 모임에서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조카에 관한 것은 형님을 통해서 들었고 눈으로만 성장을 지켜봤을 뿐이다. 그래서 의례적인 인사 외엔 건낼 말이 없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주례사로 이어졌다. 조카가 다닌 대학교의 교수라고 소개했다. 주례사가 다 그렇겠지 하며 지켜보는데 양복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낸다. 그리고 신랑신부에게 하나씩 건네며 읽으라고 했다.

결혼 전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당신을 사랑하게 된 이유 10가지를 써 오면 해 주겠노라고 한다. 그후 사랑하는 이유 10가지를 써 왔고 그것을 하객 앞에서 처음 발표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순간 숙연하던 예식장 안이 와 웃음과 함께 귀가 쫑긋해졌다. 신랑이 먼저 읽었다.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건강합니다. 어른을 공경합니다. 이어 술을 잘 먹습니다. 라고 하자 장내는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돌아서 있어서 신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어떤 표정일까 상상이 되었다. 술 잘 먹는 것이 사랑이라니

슬그머니 남편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도 그랬다. 결혼을 맘 먹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술을 잘 먹어서였다. 막걸리가 어울릴 것 같은 투박함과 아무거나 잘 먹고 자유로운 옷차림이 순수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이끌렸던 부분들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우리도 사랑하는 이유 10가지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10가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행복한 기억은 현재로부터 시작하고 나쁜 기억은 과거로부터 온다. 아름다웠던 과거의 기억도 현재 아름답지 않다면 그 시간은 사라진 것이다. 의미도 없고 존재가 없는 시간 속으로 자꾸 거슬러 오르는 나를 본다

결국 사랑하는 이유로 시작하여 미운 원인이 되어 언쟁으로 끝났다.

사명대사는 활쏘기 연습을 할 때 문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50m앞 소나무의 솔방울을 바라보았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작게 보이지만 자꾸 쳐다보면 크게 보인다. 사랑하는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 것을 바라보고, 작은 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마음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 찾아봐야겠다. 몇 개가 될지 모르지만 하나라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으로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내 마음이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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