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정치와 현실
드라마 속 정치와 현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15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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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한 방송사에서 아나운서 출신의 여인이 대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드라마로 방영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권모술수와 온갖 모략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보며 어느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저런 정치인이 나오길 바라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드라마라는 것이 허구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간혹가다 나오는 드라마 장면은 현실 정치와 유사한 면이 많다. 드라마 장면 가운데 국회에서 날치기하는 여당과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야당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도 현 정치 상황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을 한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듯 한쪽은 검은 양복을 입고 다른 한쪽은 흰 와이셔츠를 입고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얼마 전에 예산안 날치기를 저지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인 현 정치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여주인공이 토론회에 나와 국민에게,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회초리를 들어 달라고 울면서 호소하는 장면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말 그대로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대기업 총수가 검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을 방문할 때 전직 고검장이나 법무장관 등으로 구성된 법무팀을 대동하고 들어서는 장면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비리의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드라마 속 대기업 회장의 얼굴과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 총수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것은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착시 현상만은 아니다.

얼마 전 종영된 자이언트라는 드라마는 출발 초기부터 정치권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주인공이 건설사 사장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이명박 대통령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을 받아야 했다. 과거에 이명박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을 해서 국민의 기억 속에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전례가 있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 내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할 정도로 드라마 한 편이 향후 정치 상황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각 당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최근에 읽은 책을 소개했는데 그것이 예일대 교수를 지낸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세 가지 타입의 서로 다른 인간유형을 제시했다. 전통과 과거를 행위모형의 기준으로 삼는 전통지향형, 가족에 의해 학습된 내면적 도덕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하는 내부지향형, 동료나 이웃 등 또래 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외부지향형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중에서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내부지향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내부지향형은 자기 확신과 자신감, 소신의 주체성을 지니고 사람들과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내가 이 세 가지 중 어디에 속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4대강 사업의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야당을 힘으로 눌러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모습은 과거의 형태와 달라진 것이 없다

특히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의혹과 청와대의 대포폰 의혹 등에 대해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는 내부지향적인 모습은 분명히 아니다. '국격'을 운운하던 정부가 G20 정상회의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종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이전투구의 국회 모습이, 외신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돼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것 같아 실낱같던 정치에 대한 희망마저 버리게 했다.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구두로 약속한 내용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졸속으로 이루어진 예산안 통과에 국민의 마음은 냉담하기만 하다. 드라마 속의 정치에 국민이 환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사탕발림을 하면서 정치 현실은 무지하기 그지없으니 차라리 허구의 드라마 속의 정치인에게 희망을 품는 것이 낫다는 불편한 마음의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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