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의사를 기억하자
이재명 의사를 기억하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15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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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임주영 <청주보훈지청 선양주무>

일반적으로 매국노라 하면 사적인 이익을 탐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을 뜻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매국의 예시를 살펴보면 197년 고구려 산상왕의 형인 고발기(高發岐)가 왕위에 욕심을 품고 중국 한나라의 요동태수 공손탁의 군대를 빌려 자신의 나라를 공격하려 한 경우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매국행위는 역사 속에서 빈번히 발생하면서 한 국가의 존속을 좌지우지하였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매국노라 하면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나고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것이 바로 이완용일 것이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조국과 동포를 일제에 고스란히 넘겨버린 매국노 중의 매국노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완용을 용서치 않고 조국 독립을 위한 희생물로 삼고자 이완용 처벌을 시도한 애국열사가 있었으니 바로 이재명 의사다.

이재명 의사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재명 의사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매국노의 수괴를 처단하려 한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다.

이재명 의사는 어릴 적부터 기개가 굳고 총명했었다. 선생은 1904년 대한노동이민회의 하와이 이민모집에 응모하여 미국에서 수년간 노동에 종사하던 중 1907년 일제에 의해 정미7조약이 강제로 체결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조국 침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 처단 시 순종황제의 안위를 염려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만류로 우선 계획을 중단하고 항일운동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가 다시 이토 히로부미 암살 계획을 수립하던 중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소식에 고무되어 다시 귀국하게 된다.

귀국 후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일제 수괴의 처단보다는 조국을 일제에 팔아먹은 매국노들을 척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이동수·김정익 등과 함께 이완용·송병준 등의 암살을 계획하게 된다. 1909년 명동 천주교 성당에서 있을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군밤장수로 위장하여 기회를 노리던 중 추도식을 마치고 거만하게 나오는 이완용에게 달려들었다

당시 선생을 제지하려던 차부를 한 칼에 거꾸러뜨리고 놀란 이완용의 복부와 어깨 등을 수차례 난자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선생은 법정에서도 결코 결의를 굽히지 않고 법정투쟁을 계속하다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사형장에서 순국하게 된다.

이러한 선생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매국노 이완용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조국을 일제에 넘기는 조약에 서명을 하게 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12월 22일은 이재명 의사의 이완용 처단 의거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과거 우리 애국선열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고 또 희생하였는지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 아래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도리일 것이다. 이재명 의사의 의거일에 즈음하여 다시 한 번 나라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소리없이 스러져간 애국선열들에 대하여 추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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