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공장과 옥장
은공장과 옥장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1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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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윤병화 <세경대학 박물관큐레이터과 교수>

옥은 청동기시대부터 사용한 장신구 재료였으나, 극히 제한적이라서 주로 왕족과 특수계층에만 한정하여 사용하였다. 귀한 재료라는 희소성으로 옥을 캐는 것도 중요한 사항이었으며, 옥장의 숫자도 제한적이라서 경국대전상공장(京工匠)에 따르면 상의원(尙衣院) 소속 장인 중 옥장은 단 10명이었다. 조선 멸망 이후 전국으로 흩어졌던 옥장은 현재 전남의 장주원 선생, 경기의 김용철 선생, 서울의 엄익평 선생 등이 있다.

옥장 엄익평 선생은 1959년생으로 1974년 중학교 자퇴 후 홍종호 선생의 옥공방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1978년 독립하여 투각기능인 4명, 연마공 1명, 투각기능 수습공 1명 등 총 6명을 데리고 공방을 운영하였다. 이후 '가원공방'을 운영하며 꾸준한 기술연마를 통해 현재까지 보석가공, 귀금속공예, 석공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36년여간의 옥장 활동으로 1989년부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서울시공예품경진대회 최우수상 등 7회,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등 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 국무총리상 및 문화부장관상, 문화재 위원장상, 직업능력개발 산업포장 등을 수상하였다. 1998년에는 민족고유 기능전승자로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대한명인과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이사로 추대되었으며, 2008년에는 서울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옥제품 무늬형성구조 실용신안과 옥제품의 무늬형성방법 및 구조 특허를 받아 작품 개발을 꾸준히 해 오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각종 전시회에 초청되거나 개인전을 열어 옥공예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이처럼 장신구는 선사시대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으나, 차츰 금속류, 옥석류, 보패류, 견류 등을 이용하여 지배층을 대변하는 중요한 물품으로 제작하였다. 이러한 장신구를 만드는 장인을 공장이라 하며, 이들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장과 사장으로 나눠 왕가, 반가, 민가의 남녀 치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현대화 과정 속에서 공장은 서서히 사라졌고, 이 중에 금속공예와 석공예분야의 몇몇 장인만이 남아 현재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장신구의 맥을 잇고 있다.

이들 무형문화재 중 서울시무형문화재인 은공장 이정훈 선생과 옥장 엄익평 선생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살펴보았다. 두 공장 모두 30년 이상 인내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은과 옥이라는 재료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착용하는 장신구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며, 전통 장신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통 장신구는 선조들의 인내, 은유, 은은함 등을 내포한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하는 은공장과 옥장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야 말로 전통이 말살되지 않고 후대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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