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잖은 재물은 뜬구름이라던데
의롭잖은 재물은 뜬구름이라던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12.13 2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 옥천 영동)

롯데마트가 지난 9일부터 전국 82개 점포에서 취급해 온 5000원짜리 통큰치킨 판매를 16일부터 중단한다고 밝혔다. 롯데는 재료인 닭 대량구매와 유통단계 축소로 그동안 치킨 가격에 끼어 있던 거품을 빼겠다며 공익적 효과를 내세웠었다. 13일 판매 중단을 발표하면서도 "가치 있고 품질 좋은 상품을 판매해 서민에게 혜택을 주고 한편으론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대형마트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개발된 상품 중의 하나였지만, 주변 치킨 가게에 영향을 준다는 일부 여론으로 부득이 판매를 중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소비자 권익과 물가안정을 추구해 온 막중한 역할'을 여론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롯데마트의 눈물겨운 사연이 안타깝긴 하지만, 지난 9일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서 5000원짜리 치킨을 꼬집은 후에야 나온 결정이라 그런지 여론을 염두에 둔 결단이라는 설명에는 선뜻 신뢰가 가지 않는다. 피자는 봐주고 치킨만 조졌다는 말이 나올 판인데도 이날 굳건하게 '대형마트의 본질 사수'에 사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한 이마트를 보면 재벌도 재벌 나름이라는 항간의 비아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막극으로 끝난 이번 치킨 사태는 대기업과 영세상권 간 영역의 논란을 떠나 소비자의 권리와 선택이 어디까지 존중돼야 하는지 또 다른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동안 시중 치킨들이 '폭리 의혹'을 받아왔고, 롯데마트가 판매한 5000원짜리 치킨이 금세 동이날 정도로 서민층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대형마트와 치킨집을 절대 비교해 폭리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억지다. 꾸준히 논란이 돼 온 만큼 검증과 조정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대기업이 진출해 해법을 내놓을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혹할 상품을 만들어 시장을 잡겠다는 기업의 생태적 욕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는 점이다.

소비자를 중심에 둔 논쟁에서는 기업 논리가 우세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로서는 통큰치킨의 퇴장이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의 하부를 지탱하는 물물교환 수준의 마이너 경제도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두부 장수가 이웃 옷장수에게서 점퍼를 구입하고, 옷장수는 인근 식당에서 소주를 사 마시고, 식당 주인은 식재료로 두부를 구입하는 식의 사이클 말이다. 이 사이클에 보다 많은 경제인구가 참여해야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서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고, 영세상들도 대기업이 생산한 아파트나 자동차, 가전제품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구축하게 된다. 동네 치킨집이나 피자집들도 이 말단 경제구조에서는 서로를 보완하고 의지하는 엄연한 주체들이다. 서민경제와 지방경제가 갈수록 시드는 것은 이 사이클이 거대 자본의 공격을 받아 계속 훼손돼 왔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밀려 고사한 전국 전통시장들의 현주소가 참혹한 결과를 웅변하지 않는가.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폭리를 취해 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권의 상충이나 소비자 권익과는 별개의 문제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의롭지 못하게 모은 재물은 내게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沮貴, 於我如浮雲).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은 홍콩 청쿵(長江)그룹 리자청(李嘉誠) 회장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1홍콩달러를 쓰면 5센트가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대재벌인 그는 우리돈 1조원 상당의 출연기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사회활동에 나서고 있다. 하루 업무시간 10시간 중 4시간은 이웃을 위한 기금활동에 할애한다. 청쿵그룹 못잖은 재벌그룹들이 툭하면 동네상권과 맞장을 뜨는 나라에 사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기업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