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보며 빨강색도 본다
초록색 보며 빨강색도 본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0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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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
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전 충남경찰청장>

헨리 포드는 1903년 첫 자동차공장을 세웠다. 그 지역은 보행자와 자전거와 마차가 뒤엉켜 무질서했다. 거기에 자동차 가세. 혼란이 가중됐다. 충돌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편리성은 향상됐으나 사고 급증. 많은 사람이 고민했다. 오랜 세월 흐른 뒤에야 오늘날과 같은 신호등이 나왔다. 주인공은 가렛 모건. 추돌사고 참상을 목격

충격 받고 디자인에 착수했다.

노예집안 아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다. 초록과 노랑과 빨강색을 사용하는 신호등을 발명. 1923년 특허 취득. GE에 4만 달러에 팔았다. 대량생산과 설치확충을 도모했다.

자동차의 수도라는 디트로이트에도 곧바로 설치됐다. 이 기기의 목적은 사람의 안전. 보행자의 편하고 안전한 통행이 최대목적이다. 이를 위해 차량의 교통을 정리한다는 발상이다.

세계 최초로는 1868년 런던에 등장했다. 녹색과 적색의 가스등. 조지가와 브리지로 교차로에 세웠다. 국회 의사당 근처라서 혼잡한 지역이었다. 마차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기이한 기록 하나. 1950년대다. 교통정체 해소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하던 때다. 미국 조지아의 루도위 타운 사람들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플로리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동네였다.

추운 북부 거주자들이 따뜻한 남쪽 휴양지로 가려면 꼭 통과해야 하는 곳. 교통요충지였다. 주민들은 매연과 소음에 시달렸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누군가 멋진 생각을 해냈다.

이튿날 즉시 착수. 신호등의 초록색 주기를 짧게 만들었다. 서너 대 지나가면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속 모르고 달리던 외지인. 건너편에서 기다리던 보안관(Sheriff)에게 걸렸다.

위반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부분 벌금 15달러를 즉시 내고 갔다. 나머지는 무죄를 주장하고 재판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석금 15달러를 내야 유치장 신세를 면했다.

이렇게 해서 쌓인 돈이 연간 5만 달러. 한 해 예산의 네 배나 되었다. 얼마 안 있어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그 동네 거쳐 갈 일이 없어졌다. 폐허가 되고 말았다.

어디 교통신호등뿐이랴. 인생 길흉화복 신호도 도처에 산재. 맑은 눈으로 보면 안심생활 열린다. 욕심이 몸을 붙잡으면 재앙 동행. 마음의 행로 교통정리시스템의 주역은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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