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작심삼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1.2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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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조영의 <수필가>

몇 가지 가구를 바꾸려고 하니 집 안이 어수선하다. 이 기회에 안 쓰는 것은 정리해야지 싶어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생각보다 많다. 버리지 못한 이유는 각각이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부터 몇 번 망설이다 결국 제자리로 오는 낡은 물건까지.

돌아보면 먼지도 세월이 된다.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것이 나올 때는 행운권이 당첨된 기분이다. 구석으로 밀어두었던 그릇도 다시 보니 새롭고 학생들이 보낸 연서는 예쁜 상자에 넣었다.

언제였나. 호기심 때문에 시작했지만 끝을 못 맺은 미완품들. 그날의 결의는 누렇게 변해 있다.

살면서 처음이란 말 앞에 다짐하고 설렌 적이 얼마큼인가. 새해는, 새 학기에는새 수첩에는, 새로 쓰는 일기에는, 새 노트에는, 새로운 만남에는…. 열정과 희망으로 시작한 첫날의 다짐은 희미하다. 그래도 얇아진 달력 뒤로 하나 더 남은 12월이 있어 위안이 되는 요즈음이다.

올해는 작심삼일이 되어 버린 것이 무엇이었나. 내게 적합한 일이었는가. 혹은 누군가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장대하게 계획을 세운 것 같은데 완성된 것은 없다. 늘 그랬듯이 작심삼일로 끝났다.

여럿이 있는 곳에서 말했더니 곁에 앉은 분이 용기를 준다. 본인의 성격을 알면 나태해지려고 하는 삼일째 다시 작심삼일의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한다. 그러면 실패하지도 않을 뿐더러 늘 현재진행형이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후회하고 포기했던 것은 하지 못할 일을 욕심 부렸기에 얻은 좌절이다. 나를 인정하는 일이 끝을 맺지 못하는 불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퇴근하려는데 문자메시지가 온다. 심야에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알림이다. 삶이 각기 달라서 가장 적합한 시간이 늦은 밤이다. 저녁은 집에서 먹으니 회비에 대한 부담 없고 다른 모임과 겹쳐도 만날 수 있기에 마음을 모은 것이 오래전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자주 만났다. 우선은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좋았다.

논쟁이 된다든가 고담준론(高談峻論)은 처음부터 배제하기로 했다. 가장 소소하고 평범한 이야기. 전화로 수다 떨듯 그저 그런 일들을 펼쳐놓는 장이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야기 중에서 글감을 얻고 풀리지 않던 글의 흐름을 터주었다. 그무렵 나는 늪에서 헤맸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용서되지 않은 일들이 나를 옥죄며 괴롭혔다. 마음은 아니라고 했지만 글속에 원망과 미움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글을 다시 쓰며 행복해진 것은 야(夜)한 밤에 나눈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동안 뜸했다. 작심삼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면서도 바쁜가 보다, 이해하기로 했다.

반가움에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응답을 보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오늘 같은 날은 늦은 시간에 나가기가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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