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선물 하나
삶 속의 선물 하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1.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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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정상옥 수필가

하루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뚜렷한 근거도 없으면서 괜스레 기분이 들뜨고 뜻하지 않던 횡재를 한 것처럼 부푼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가을을 타는 것이었나. 형형색색 고운 낙엽이 융단처럼 깔려 있는 길을 걷다가도 뭔지 모를 허무감이 가슴을 헤집으면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의 나락으로 빠져들곤 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앙상한 가지에서 몇 남지 않은 이파리가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파르르 떠는 것을 보면서도, 잎사귀를 다 떨구고 휑한 모습으로 바람을 맞고 있는 나목 앞에서도 서글픈 내 모습으로 보였다. 바람소리만 윙윙 들려도 몸속에서 힘이 빠지는 것만 같은 무력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푸석하니 주름진 얼굴을 거울 앞에서 마주할 때면 더 위축되어 이유 없는 자괴감에서 헤어나질 못했었다.

며칠째 허덕이던 그런 기분을 말끔하게 날려준 건 오늘 아침 중년의 택시기사가 행선지를 물으며 흘깃 쳐다보더니 "참 고우십니다."라는 한마디의 말이었다. 여자 손님에게 건네는 상투적인 인사치레거니 생각하며 나 또한 감사하다는 말도 안 하고 피식 웃어넘겼는데 정말 신기했다. 강의를 하는 동안도 가슴 깊이서 뭔지 모를 열정이 솟구치는 듯 열강을 할 수 있었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내내 몸이 가벼워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잠깐의 칭찬에 온 마음이 들뜨고 행복해질 만큼 경박한 연륜도 아니고 지금껏 살아오며 칭찬 한마디가 궁색하리만큼 메마른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온 것도 아니었건만…. 무심코 받은 상대의 밝은 인사 한마디가 삶 속에서 이렇게 역동의 큰 힘으로 작용할 줄 그때는 진정 몰랐다. 사람은 때때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칭찬을 즐긴다더니 내가 오늘 꼭 그 짝인 듯싶었다.

좋은 말이란 수놓은 비단과 같아서 펼치면 모든 무늬가 나타나지만 접어두면 그 가치를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또 비수를 손에 들지 않고도 가시 돋친 말로 여러 사람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남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하고 찡그린 얼굴에 꽃을 피워준다면 살면서 내가 뱉은 그 숱한 말들은 누군가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상대에게 칭찬의 말이 범속한 데서 오는 경우에는 올바르지 못하고 무가치하겠지만 남의 덕행에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단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수양의 표본이고 인격 수준이었으련만…. 돌아보면 상대에게 진심을 다해 칭찬하며 아름다운 언어로 찬사를 보낼 때는 많이 주저했었고, 삿대질하며 질책할 땐 정곡을 찌르는 목소리가 키를 훌쩍 뛰어넘곤 했었다.

나이테가 점점 굵어짐에 따라 행동은 민첩하게 해야 하며 말하기는 과묵해져야 함에도 사리분별하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분명 인격수양이 덜됨을 알기에 고운 여인이라 평가받기에는 아직 부끄럽기만 하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난 후 잠들기 전 행적과 행실을 돌아볼 때마다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는 날보다는 후회와 미련이 많이 남는 날이 더 많은 아직도 덜 여문 인격임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기품을 겸비한 품격 있는 인격을 매만지고 다듬어 내 인생에서 다시 맞을 가을날에는 후회와 번민을 결코 남기지 않은 진짜 고운 여인으로 살아가리라. 가만히 있어도 쓸쓸해지고 스산한 가을의 끝자락에 설지라도 사심이 섞이지 않은 한마디의 찬사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삶 속에서 얻은 커다란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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