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톤즈
울지 마 톤즈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31 2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사망(死亡)과 운명(殞命)과 선종(善終)은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인으로서 생물학적 시계를 더 이상 차지 않는 것이 사망이요,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의 시간만큼 사는 것이 운명이요, 착하게 살다 착하게 죽는 것이 선종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는 뜻의 '착하다'는 말을 입에 붙은 듯 쉽게 사용하면서도, 실상으로는 그것의 참된 빛깔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살다보니까 선종하는 분들의 경우를 대할 땐 코끝과 가슴이 찡해지고 맙니다.

올해 1월, 진정으로 착하게만 살다가 하늘로 불려 올라간 이태석 신부를 다룬 영화 '울지 마 톤즈(Don't cry for me sudan, 2010)'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잘하는 선시선종(善始善終)의 삶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다해 가장 낮은 사람들을 찾아가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의대를 졸업해 인턴 과정까지 마친 상태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어 머나먼 이국의 땅으로 떠났는데, 꼭 신부가 아니고 의사로도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라고 이태석 신부는 대답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에서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일화를 들으면서는 '선순환(善循環)'이 가져오는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긍정의 느낌표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직접 건축한 톤즈 공동체 돈보스코 병원의 심장과 같았지만 이젠 주인 잃은 방이 되어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진 진료실의 '진료(consultation)'란 단어를 보면서, 아픈 마음의 얘기를 들어주는 '상담'과 아픈 몸의 상처를 진정시켜주는 '진찰'이란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울렀던 그의 일상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제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헤매 사느라고, 생판 모르는 사람의 환부(患部)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고름을 빼내준 적이 없는 저와 같은 사람이 어쩌면 무익한 별종(別種)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다"는 바람대로 이태석 신부는 몸소 헌신했습니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Tonj) 사람들은 8년 동안 친절한 이방인으로서 그들 곁에 있던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으로 인해 눈물바다에 빠져 있었습니다. 먼저 떠난 그들의 '쫄리(John Lee)'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울지 마, 톤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