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칸 채우기
빈 칸 채우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2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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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조영의 <수필가>

토요일, 혼자 우암산을 오른다. 나는 접도(蝶道)다. 우암어린이회관에서부터 상당산성을 오르는 곳까지다. 왕복 두 시간가량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다.

오늘은 산에 오르는데 초입부터 시끌시끌하다. 대학생인 듯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오른다.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일행 속으로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두 두 사람씩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그중 한 사람은 안대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우들이 등산을 하는구나 싶어 앞지르지 못하고 뒤를 따랐다.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허리를 감싸듯 안고 가기도 하고, 온 힘을 주며 팔을 받쳐주는가 하면, 손만 잡고 가는 사람도 있다. 거기요, 너무 스킨십이 진한 거 아닌가요 인솔자의 농담에 쿡, 웃음을 터트린다.

산은 초입부터 가파른 오름길이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나온다. 남자가 짝인 여자의 숨소리는 더 거칠다. 다가가서 잡아 주면 좀 더 편히 오를 수 있을까. 둘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아름다워 가슴이 더워진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땀을 흘리며 도와준 적 있는가. 생각에 얽매임 없이 소중한 시간을 나눠주었는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오르는 그들에게서 나를 돌아본다.

뒤에서 다급한 외마디 소리가 들린다.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끌어당기는 손이 더 가냘프다. 장난끼였나. 아니면 상대가 마음 편히 안내하지 않았을까. 인솔자의 도움으로 다시 나란히 한 줄이 되었다. 가끔 까르르 웃음소리가 난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도 들린다. 생각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가을 하늘빛이 얼마나 투명한지. 여뀌꽃의 붉은빛과, 지금 햇살이 어디쯤에서 비추는지. 참나무 잎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모양이며, 시드는 들풀까지 알려주리. 그러다 정말 힘들면 쉬고 싶은 마음까지도 솔직히 말하리라.

가풀막진 곳을 올라 평편한 곳으로 접어들 때 그들과 헤어졌다. 지금부터 다른 곳으로 갈 거라는 인솔자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늦어진 마음을 재촉했다.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은 산을 내려올 때다.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려고 쉬었다. 약수가 나오는 곳은 하나다. 어수선한 틈 사이에서 그들이 보였다. 반가웠다. 조금만 더 힘내. 속으로 응원을 하며 먼저 마시기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안대가 머리 위로 올라와 있다. 몸도 자유롭게 움직인다. 또 한 팀이 올라오더니 안대를 벗었다. 눈화장이 돋보인다. 주변은 모두 그들이다.

나는 목소리까지 떨렸다. 잠깐만요, 안대는 체..험...이었나요? 웃음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안대를 쓴다. 산 정상은 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보았던 용기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산에 올랐던 기억으로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또는 안대가 허울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세상은 가린 눈 안에 다 있지 않은가.

그들을 보면서 빈 칸 채우기를 떠올렸다. 빠진 부분을 채워 문장이 완성되듯 누군가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인정해주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오늘 내가 쓴 빈 칸은 어쩜 오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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