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의 역사적 의의·교훈
청산리대첩의 역사적 의의·교훈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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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김명식 <청주보훈지청 이동팀담당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하여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고, 상실된 국권회복을 위해서 우리의 선열들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간단(間斷)없는 투쟁을 하였다.

일제 강점하 35년 독립투쟁사에서 가장 찬연히 빛나는 청산리 대첩이 올해로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청산리 대첩은 1920년 10월 21일 단 하루에 끝난 것이 아니라 21일 아침부터 26일 저녁까지 꼬박 싸운 6일간의 전쟁이었다.

10월 21일의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 천수평 전투, 어랑촌 전투, 그리고 맹개골, 만기구, 쉬구, 천보산, 고동하 전투 등 6일간에 걸친 일련의 전투를 통칭하여 청산리 전투라 하는 것이다.

10월 21일 최초의 전투인 백운평전투 지역이 삼도구의 청산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곧이어 벌어진 전투까지도 '청산리'라는 지명으로 묶어 이름을 따오게 된 것이다.

6일간의 전투로 일제는 2천여명의 사망자와 1300여명의 부상자를 내고 아군은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이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통계숫자가 보고서 상 차이가 있겠으나 확실한 대승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절대 열세의 병력과 장비로 10배가 넘는 일제를 맞아 패퇴시키고 3300여명을 살상한 우리의 역사에 찬연히 빛날 대승리였다.

청산리 대첩은 일조일석의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권을 상실한 지 1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전년도에는 거대한 자주독립을 고창하는 3.1운동의 민족의 함성을 들었다. 그 여파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구심체를 가진 독립운동의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됐다.

만세만 부른다고 독립이 되지 않는다. 평화를 애호하고 자유와 인권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당연히 독립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는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쇠약한 인접국을 침략해 식민지를 삼는 국가가 독립을 시켜 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며 독립시킬 국가라면 당초에 침략을 안 했을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토 확장의 기회를 삼으려는 침략주의자에게는 강력한 물리적 자위력이 아니고는 독립은 애초에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공상주의, 이상주의, 탁상공론으로는 독립달성은 되지 않는다.

3.1운동의 만세 고창이 독립달성으로는 즉시 달성되지 아니하였다.

청산리 전투의 대승은 국권을 회복하려는 투철한 민족정신, 반만년 역사의 끈질긴 투쟁정신, 내 나라 내 민족은 내가 지킨다는 투철한 호국정신과 무장투쟁이 아니고는 독립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애족애민의 정신이 합쳐져 이룩된 것이다.

무기와 병력에서 절대 열세하고 충분한 군사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그야말로 중과부적의 전투에서 대승한 것은 투철한 민족정신, 고조선 이래 전승되는 민족 고래의 숭고한 평화애호 및 불의에 대한 강한 응징 및 민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청산리 전투는 단지 독립군만의 승리가 아닌 동포와 더불어 혼연일체가 되어 민족혼을 초토화시키려는 간교한 일제의 대군과 접전하여 대승하고 민족혼을 수호하고 민족의 자부심과 향후 독립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청산리 대첩 후 간도의 동포는 천인공노할 경신참변을 겪고 독립군 부대는 자유시 참변으로 와해직전 상태까지 갔으니 망국민의 설움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바 여기에서 우리는 청산리 대첩의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국권 상실 후 후회하고 국권회복 하려 하지만 갑절의 피눈물을 흘려야 하고 흘린다고 국권회복의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청산리 대첩 및 경신참변 10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지나간 쓰라린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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