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취곡(私積聚穀)
사적취곡(私積聚穀)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1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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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의 기업채근담
송재용 <작가>

사적취곡(私積聚穀)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개인을 위해 몰래 곡식을 모아둔다는 뜻이다. 의역을 하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몰래 돈을 모아두었다가 후일을 대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위나라 때에 돈 많은 사내들은 장가를 든 뒤 몇 년만 지나면 새 마누라를 얻는 게 다반사(茶飯事)였다.

어느 날 애지중지 아끼던 딸의 혼례 날자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딸에게 충고를 했다.

덕순아, 시집가면 서방 놈이 너 하나만 평생 꿰차고 산다는 보장이 없으니 혼자되었을 때 먹고 살 돈을 반드시 모아두어라."

아버지, 그런 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예를 들면 장에 가서 생선을 사 올 때 30원을 주고 샀으면 40원을 주었다고 속인 뒤 10원은 네 주머니에 꼭꼭 숨겨놓으란 말이다."

그러다 시어머니한테 들키면 치도고니를 당할 텐데요?"

자고로 비자금이란 혼자 쓰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러니 시어머니한테 이따금 비단 옷도 사다 주고, 시아버지한테는 귀한 술이나 외제 담배를 구해다 드리면 적당히 눈감아 줄 거다."

그런데 그 집 시어머니는 살쾡이보다 더 표독스럽다는데요."

그러면 시어머니가 곡간에서 곡식을 빼돌리는 걸 눈여겨보았다가 시아버지한테 귀띔해주면 일이 터져도 시아버지는 네 편이 될 거다."

덕순이는 아버지의 말대로 시집을 가자 물건 값을 속이고, 곡식을 슬쩍슬쩍 내다 팔아 비자금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치 빠른 시어머니한테 발각되고 말았다.

덕순이, 너 이년! 지금까지 네 수중에 챙겨 놓은 돈이 얼마인지 이실직고해라."

어머니, 제 수중에 챙겨놓은 돈 한 푼도 없습니다."

이년이 누굴 감히 속이려고 해?"

시어머니가 덕순이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있는데 거나하게 취한 채 집에 돌아온 시아버지가 덕순이 역성을 들어주었다.

임자도 나 몰래 친정으로 수없이 쌀을 빼돌렸으면서 애 좀 그만 닦달하라고.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구먼."

당신은 그동안 첩년들 밑구멍에 쑤시어 박은 돈이 얼마인지 계산이나 해 봤어요?

이놈의 여편네, 아가리를 짝 찢어놓기 전에 조용히 못해!"

부모가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싸우자 아들이 덕순이를 부엌으로 끌고 가더니 눈에서 번갯불이 치도록 귀뺨을 올려붙였다.

다 네년 때문에 일어난 사단이니 당장 집구석에서 나가란 말이다!"

덕순이는 그날 밤 전대만 달랑 들고 친정으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친정에 온 덕순이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시집가서 아버지가 시킨 대로 돈을 모으다가 들켜 쫓겨났습니다." 하고 친정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러자 친정아버지는 전대를 툭툭 치면서 "덕순아, 그동안 챙긴 돈이 대략 얼마나 되냐?" 하고 동문서답을 했다.

얼추, 일백 량은 될 거 같네요."

혼수 비용이며 중매쟁이한테 준 돈보다 몇 배나 많잖아? 그동안 억수로 고생했구나."

아버지,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예요? 앞으로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구먼."

그건 눈곱만큼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마련한 비자금 중 일부를 뚝 떼어 중매쟁이한테 주면 더 큰 부잣집 남자를 만나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게 될 거다그러니 걱정은 붙들어 매고 내일부터 몸치장이나 열심히 하면서 선볼 준비나 하여라

정말이에요? 아버지."

그런데 며칠 뒤 두 부녀는 포도청에 불려가 주리가 틀리도록 문초를 받고 비자금을 몽땅 게워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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