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석전제 유감
2010년 가을 석전제 유감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9.3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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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김양식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9월 28일 청주향교에서는 정례적인 석전제가 열렸다. 석전제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에게 올리는 제례의식으로 매년 5월 11일과 9월 28일에 거행되고 있다. 청주향교에는 공자, 증자, 맹자 등 5성(五聖)과 주자, 정자 등 송조 6현(宋朝六賢), 최치원, 정몽주, 조광조 등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석전제는 바로 이들 29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지역 주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제례의식이다.

청주향교 가을 석전제는 관행대로 이시종 충청북도지사를 초헌관으로 하여 한 시간 넘게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대성전 앞마당이 신구 세대의 엇박자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원로 유림들은 석전제에 참여하여 매우 엄숙한 분위기에서 옛 성현을 기리고 추모하며 성인의 길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지만, 젊은 세대는 청주향교 앞마당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 세대 간, 서양과 동양의 사상과 문화 간 채울 수 없는 간극을 만든 것일까? 그래서 청주향교에서 거행된 참으로 의미있는 제례행사가 그들만의 의례로 끝나게 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가능하지만, 간극을 채울 실질적인 힘은 없다. 다만, 여기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전통과 사상과 가치체계는 1876년 개항 이후 동과 서의 양극으로 나뉘어지고 서쪽으로만 향한 나머지 설 땅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젠 돌아보아야 한다. 이젠 지난 오백년, 일천년 이 땅 위에서 만개하였던 사상과 문화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물려준 문화적·사회적 유전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튼실한 뿌리가 있는 미래 가치와 문화를 창출하는 데 있다.

청주향교 석전제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절차문제이다. 석전제 식순이 조선시대 유림을 위한 것이지, 오늘날 한글을 사용하고 가치체계가 다른 현대인을 위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또한 절차가 너무 복잡하였다. 누구를 위한 제례인지 혼란스러웠다. 절차를 성독하는 것 역시 옛 법을 따르는 것이지만, 현대인의 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한문을 공부하지 않은 세대의 경우 알아들을 수 없는 식순이었다. 이러니 젊은 세대가 석전제에 참석할 리가 없다. 현대 물질문명에 사로잡혀 전통문화에 관심이 없다고만 비판할 수 없다.

현대인의 가치체계와 문화적 관점과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간극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고민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석전제의 간극을 채우는 힘은 왜 이 시대에 석전제라는 제례의식을 거행해야 되는 것인가에 대한 원리와 원칙의 합의이다. 향교 대성전에 모셔져 있는 분들은 역대 대학자요, 위대한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이 고민하고 주장했던 내용들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정한 답을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숭모하고 존경하고 위대한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뜻으로 석전제를 거행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한 합의와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석전제는 시민의 축제로 얼마든지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석전제의 식순을 현대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식순과 어법을 바꾸어야 한다. 내용도 성현을 추모하는 축제의 장으로 개편해야 한다. 과감히 현대적인 홍보마케팅 기법을 활용하여 석전제를 선전하고 그를 통해 모두의 제례의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9월 28일은 전통과 옛 성현과 만나는 날, 진정한 삶의 길을 성찰하는 사색의 날, 다 같이 위대한 성인이 되는 축제의 날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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