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딸과 채용선진화 방안
유명환 딸과 채용선진화 방안
  • 김영일 기자
  • 승인 2010.09.05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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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영일 본보 대기자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시한부 인생이 됐다. 시집간 딸의 계약직 사무관(5급) 특채와 관련해 4일 사의를 표명, 후임 장관후보자가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 임명장을 받을 때까지만 장관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인 유 장관의 딸은 외교통상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결혼을 위해 지난해 9월 퇴직했는데 계약기간 2년을 넘겨 3년 3개월을 근무하면서 무단결근 등의 공직자답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있을 때 모친이 나서서 딸의 근무부서에 전화를 했다고 하니 한스럽기까지 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편(正己篇)에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正冠)'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외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다른 사람의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다. 이는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삼가라는 얘기다.

유 장관은 딸의 채용과 관련해서 정말로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결국은 특채에서 1명을 뽑는데 자신의 딸을 뽑았다는 것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또 첫 공모에서 응시자들을 모두 탈락시키고 조건을 바꿔 재공모한 것은 아무래도 미심쩍다. 처음부터 의심받을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명예스럽게 공직을 마감했을 것이다.

이제 유 장관은 시한부 공직수행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 많은 생각 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새 국정방향으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 구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들어 있으면 한다. 국가의 리더그룹이 솔선해서 공정사회를 만들어야할 책무가 있다. 유 장관은 37년의 공직생활에서 생긴 지혜를 공정사회구현에 쏟았으면 한다.

공정한 사회는 무엇보다도 빈부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한 사회이며 패배자나 낙오자도 다시 일어서고 추월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 대통령처럼 밑바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사회, 어느 방면이고 진입장벽이 없는 그런 사회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명환 장관의 딸 문제를 계기로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행안부 자체에서도 외교부의 특채 과정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계획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은 행정고시를 없애는 대신 민간 전문가를 특채로 선발하는 내용이다. 특채이기 때문에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유 장관의 딸 특채는 공정성도 투명성도 모두 상실했기에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민간 전문가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선 민간 전문가를 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과연 민간 전문가를 어떻게 양성하나. 기업체의 인재를 빼가겠다는 속셈인지. 막대한 수강료와 긴 교육기간 문제로 진입장벽을 잔뜩 치고 있는 로스쿨이나 비즈니스스쿨, 의치학전문대학원 졸업자를 뽑겠다는 것인지.

대학전공에 관계없이 문호를 개방했다지만 결국은 없는 자들에게는 이들 학교나 학위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우선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 기간을 기다릴 수 없고 수업료가 2000만원 내외로 어마어마해 넘볼 수 없는 산이나 다름없다.

이번 유 장관 딸 문제를 계기로 미래의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인재들의 진입장벽에 대한 철저한 고찰이 필요하다. 진입장벽을 없애겠다면서 오히려 돈 때문에 제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행안부는 채용선진화 방안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을 보듬어야 한다. 개악하는 일이 없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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