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려지기(黔驢之技)
검려지기(黔驢之技)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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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의 기업채근담
송재용 <작가>

검려지기(黔驢之技)란 검주에서 기르는 노새의 재주란 말이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자신의 기술이 별것이 아닌 줄 모르고 자만하다가 낭패를 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검주에는 노새를 기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농부가 먼 곳까지 가서 많은 돈을 주고 노새를 사왔다. 농부는 일을 시키지 않을 때는 노새를 집 뒤 숲속에 풀어놔 풀이나 나뭇잎을 마음껏 뜯어먹게 했다.

그런데 그 노새는 부모 자식과 헤어져 타향에서 외롭게 사는 게 슬퍼서 그런지 이따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곤 하였다.

어느 날 배가 고파 먹잇감을 찾아 근처를 배회하던 호랑이가 울음소리가 기이해 노새한테 다가갔다.

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인데 덩치가 억수로 커서 잡아먹으면 온 식구가 며칠 동안 포식을 하고도 남겠는 걸... 그런데 저 자식이 싸움질에 도통한 놈인지 알 수 없잖아? 뿔이 없는 걸 보면 대갈받이는 못할 거 같고... 아무리 싸우는 재주가 없더라도 체격이 우람해 함부로 덤볐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는 걸...

한편 노새는 자신에 비하면 키도 작고 몸집이 반밖에 안 되는 호랑이가 덤벼봤자 뒷발질 한 번으로 박살낼 자신이 있는지 나무에 기대서서 태연하게 고향 생각만 하고 있었다.

호랑이는 노새 주위를 빙빙 돌다가 등에 올라타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노새는 뒷발로 흙을 파 호랑이 얼굴에 확 끼얹었다. 호랑이는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낸 뒤 이번에는 앞에 가서 얼씬거리다 공격 자세를 취해 보았다.

노새는 덤비려면 덤벼보라는 듯이 멀뚱거리다 이번에도 뒷발질만 계속했다.

알았다! 네놈은 뒷발질밖에 못 하는 놈이구나.

호랑이는 날렵하게 몸을 날려 노새의 목줄대기를 물고 늘어졌다.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로 목을 물고 늘어져 있는데도 노새는 헉헉거리며 뒷발질만 했다. 노새는 호랑이를 몸에서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노새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호랑이의 길고 날카로운 이빨은 노새의 목 안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 들었다.

노새는 한동안 몸을 뒤틀며 단말마의 숨길을 내쉬다가 썩은 고목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호랑이는 너부러져 있는 노새를 바라보면서 측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식! 덩치 값도 못하는구먼... 나 같은 놈하고 싸워서 이기려면 뒷발질 말고 다른 재주 좀 배웠어야지...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상품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 LED TV, 선박, 휴대폰, 자동차 등 세계 일류화 상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덕분에 수출이 잘 되어 나라 곳간에 달러가 계속 쌓이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일본과의 교역에서는 역대 가장 큰 적자를 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출이 늘면 일본의 일부 기업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번다는 말이 있다.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일본에서 핵심부품이나 첨단 소재를 상당량 수입해 쓰고 있다.

그래서 수출이 늘면 그에 비례해서 일본에서 사오는 부품이나 소재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대일 무역 적자가 쉽게 개선될 리가 없다. 이는 일부 첨단 기계, 부품, 소재와 관련된 우리 기술은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어쨌든 우리는 수출이 잘 된다고 으쓱할 때가 아니다. 요새 기업 CEO들이 자주 쓰는 <졸면 죽는다>는 말처럼 <검주의 노새>가 되지 않으려면 기술 인력 양성과 첨단기술 개발 투자에 더욱 박차를 가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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