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은 통치권의 원천 무효화를 바라며
빼앗은 통치권의 원천 무효화를 바라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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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영순 <성균관 부관장>

우리나라는 천여 번이나 되는 내외침을 받으면서도 단군왕검의 홍익인간이라는 민족혼을 이어 받아 단일민족으로서의 맥을 계승 발전하고 영역을 지키고 있다. 먼 옛날의 침략사건은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너무나 생생한 일본국에 주권을 빼앗긴 35년간의 창탈당한 강점기는 잊을 수가 없다.

언어, 성씨, 재산과 사회, 역사 고유한 전통문화의 보존을 위한 행사를 못하도록 우리나라 국민을 금수와 같이 취급하고 일본의 예속국화하고자 가혹한 학대를 당한 고초를 겪은 세대나 필자도 나라 없는 설움의 감정이 서린 생각을 하면 한 맺힌 눈물이 흐른다.

우리의 선조들께서는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1907년 헤이그에서 이준 열사의 순사, 1909년 10월 26일 이등 박문을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안중근 의사,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민족 독립운동을 부르짖고 부당한 침략을 항거하기 위해 전국적인 의병 및 열사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봉기를 들었다.

전국 211개 지역에서 1542회에 걸쳐 2백2만3천여명이 참가, 7500여명이 사망하고 4만7000여명이 체포되었다.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세계만방에 호소와 윤봉길 의사와 같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항일운동의 피나는 희생이 있었기에 8.15광복을 이루었다.

광음여전(光陰如箭)이라는 세월의 흐름은 화살과 같이 빠르고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술국치의 100년을 맞았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의 외교권의 박탈과 한국에 대한 발판을 굳게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을사늑약을 명치 38년(1905년) 11월 17일 체결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명치 43년(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라고 하는 한일병탄을 체결,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이처럼 민족의 치욕인 경술국치는 100년의 세월이 흐르고도 핍박당한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일병탄은 한 나라의 자주적 개혁을 가로막았던 사건으로 일본정부는 사죄와 반성의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선 두 나라가 적대 감정을 버리고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경쟁적 공존이 글로벌 시대에 사는 오늘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에서 강제징용과 일본군위안부 등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란 전제 조건이 따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천여명은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한일병탄은 무효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와 간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에게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라는 요청서도 함께 전달했는데 이 때문인지 간 일본 총리가 10일 사과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흡하고 실망스러우며, 사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일본 정부가 한일병탄이 원천무효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릇된 조약을 원천 무효화하여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적대감정에서 벗어나 동기지친(同氣之親)의 형제 간 혈흔의 동반자 관계가 되도록 바라며, 이야 말로 어둡고 암울한 과거가 청산되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나가는 것이고 양국 발전의 동기부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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