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張英姬)
장영희(張英姬)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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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며칠 전에 장영희(1952~2009)가 쓴 '살아 있는 순간 오늘도 공부한다'를 읽었다. 그는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 되었으나 이를 이겨내고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1년에 유방암, 2004년에 척추암을 이겨내었으나 2008년에는 간암까지 발병하여 치료를 받아오다가 지난해 사망한 영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였다.

오늘은 그의 글에서 몇 개의 단락(段落)을 뽑아 그대로 옮기면서, 짧게나마 공유(恭惟)하고 싶다.

"항암주사를 꽂고 병상이 열두 개나 놓여 있는 입원실에 누구라도 하루만 누워 있으면, 돈 많은 부자나 대학교수나 정육점 아줌마나 결국 생명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갖고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마치 풍랑 속에서 한 배를 탄 사람들처럼 동지의식을 느끼게 된다. 서로 싸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눠먹고, 아픈 할머니를 따라온 손녀를 함께 돌보고, 처음 본 사람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가운데 언제나 병실은 떠들썩하다."

그렇다. 결국은 생명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생명 없이 썩어질 것을 차지하려고 하이에나처럼 몰려다녀서는 불쌍하고 가련하게 될 뿐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해야 한다. 우리들의 공동체가 생명의 튼튼한 핏줄로 뜨겁게 연결되어야만 함께 살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들의 화제는 이전에 일상적으로 관심이 있던 것들누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누가 어떤 자리로 승진했는지, 정치권의 아무개는 왜 그런지, 누구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갔는지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한다. 서로의 병세가 지금은 어떤지, 지난 CT 촬영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물론, 이전에는 너무나 가치 없고 사소하게 느껴지던 일, 예컨대 어디에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어디에 가면 더 아름다운 산을 볼 수 있고,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하면 하루를 더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지, 어떤 책 어떤 영화가 더 재미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한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나는 이미 아픈 것일까? 내가 늘 하는 얘기가 몸에 좋은 음식과 아름다운 산과 깨끗한 공기와 나를 끌어당기는 책과 영화에 대한 것이니 말이다. 재테크와 높은 자리와 정치적인 가십과 학력 등과 같은 문제가 내겐 오히려 비일상적인 것으로 다루어지니 말이다. 여하튼 관심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장영희는 글의 말미에 어느 선사가 득도를 하고 읊었다는 게송(偈頌)을 소개한다. "오! 정녕 놀라운지고./내가 장작을 패네./내가 샘물을 긷네…." 그것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득도를 하고 나서야 그 일의 소중함을,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말이 있다고 덧붙인다. "오, 정녕 놀라운지고. 내가 살아서 지금 글을 쓰고 있네. 내가 저 넓은 하늘을 보고 있네. 정녕 놀라워라…."

나는 이런 말을 해보고 싶다. "오, 정녕 놀라운지고. 내가 사람의 길을 묻고 있네. 내가 가끔 노래를 부르고 있네. 정녕 놀라워라…."

장영희는 다른 글에서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가 말하고자 한 '기본'이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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