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나무
웃는 나무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1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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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박명애 <수필가>

이른 아침. 모처럼 남편과 함께 집근처 산에 올랐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길이 촉촉해 걷기에 좋았다. 도심 속이지만 마른 먼지 풀썩이는 입구와 달리 조금만 들어가면 나무들 살랑거리는 소리, 부식중인 나뭇잎의 알알한 냄새들이 그늘진 대기에 깊게 배어있다. 천천히 걸으며 숨을 깊이 들이 마시면 축축하고 미지근한 향내로 나무들이 이야기를 걸어온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도 잠시뿐이다. 눈만 빼꼼 내놓은 채 완전무장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어깨를 스쳐가며 고요를 흔들어 놓는다. 자외선 차단도 좋지만 이방인처럼 섬뜩하다. 저렇게 꽁꽁 싸매고 전투적으로 산길을 걸어야 하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 느린 걸음으로 솔잎 쌓인 길을 지나 산을 넘었다. 그런데도 온몸이 흠뻑 젖었다. 숨도 가쁘다. 길고 구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하늘을 가린 작은 빈터가 반가워 가장자리 그루터기에 등을 기대고 잠시 앉아 한숨을 돌렸다.

햇빛이 소나무들 사이로 비스듬이 비쳐들었다. 기다랗게 뻗은 한 줄기 빛 속으로 나무 부스러기로부터 일어난 미세한 먼지들이 보였다. 지난해에 탈바꿈을 하고 버려진 껍데기. 생명이 잉태시킨 복잡한 씨앗 주머니들. 그들이 스치며 내는 조용한 살랑임. 달콤한 햇빛 속으로 작은 생물들의 속삭임이 희미하게 들렸다가 사라진다. 숲에는 지나간 시간이 넉넉하게 호수처럼 고여 있다.

그 시간 속에는 인류 문명에 기여한 나무들의 역사도 있다. 난방과 취사의 연료가 되어주고 중요한 건축의 재료이며, 생활도구였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였고 예술품이었다. 가장 위대함을 꼽으라면 지식과 즐거움을 주는 책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 숲이 종이 때문에 매년 3만 제곱킬로미터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가 단 하루 동안 사용하는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서 1200만 그루의 나무가 베어진다니 지금 내가 숲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재활용코너에 늘 쌓여있는 종이들. 열어보지도 않은 각종 홍보물, 책, 전단지, 신문, 고지서가 되어 하루를 살고 버려지는 종이들이 지구에서 생명이 가장 긴 유기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종이들을 분리수거함에 가지런히 넣은 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서던 기억이 새삼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아파트 재활용코너에는 종이뿐만 아니라 사흘이 멀다 하고 나무로 만든 가구들이 버려진다. 아직 쓸만한데도 새 아파트로 입주를 하는지 미련 없이 두고 간다. 오랜 시간 부대끼며 살아온 추억과 함께 가구로 생명을 이어오던 나무도 생애에 종지부를 찍는다. 바라볼 때마다 나무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그런 점에서 요즘 미동산 수목원에서 열리는 인형 전시회 '웃는 나무전'은 참 의미가 깊다. 나무를 사거나 베지 않고 주로 버려진 잡목들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든다니 작가의 마음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 나무본연의 생김을 살려 만든 각양각색의 나무인형에는 동화처럼 밝고 따뜻하고 즐거운 유머가 담겨 있다. 버려진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웃는 나무로 만들어 준다는 철학이 깊은 울림을 준다. 그 마음에 동화되어 웃는 나무 만들기에 동참한 지 이제 한 달. 산길에서 내려오며 발길에 채이는 나무토막 하나 주운 뒤 가슴이 콩닥콩닥 설렜?? 어떤 웃음을 만들어줄까 세상 모든 창조물들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자연과 인간 모두를 존중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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