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대처법(靑山對處法)
청산대처법(靑山對處法)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5.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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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사람들은 청산(靑山)을 벗 삼아 살고 싶기에 노래까지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떤 곡조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을까 몹시 궁금했다.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서 살겠노라./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서 살겠노라.//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서 우는구나 새여./너보다 근심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서 울며 지낸다.//날아가던 새, 날아가던 새를 보았느냐? 평원 지대로 날아가던 새를 보았느냐?/녹슨 연장을 가지고 평원지대로 날아가던 새를 보았느냐?//이럭저럭하여 낮은 지내왔구나./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떻게 지낼 것인가?//어디에다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추려던 돌인가?/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그 돌에 맞아서 울고 있노라.//살겠노라 살겠노라 바다에서 살겠노라./나문재랑 굴조개랑 먹으며 바다에서 살겠노라.//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을 지나다가 듣노라./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을 켜는 것을 듣노라.//가더니 불룩한 술독에 진한 술을 빚는구나./조롱박꽃 모양의 누룩 냄새가 매워 나를 붙잡으니 나는 어찌 하리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노랫말을 현대어로 옮긴 자료이다. 판소리를 하는 가까운 분에게 물어봐도, 노랫말 외에 전해 내려오는 옛날 곡조는 없다고 한다. 가무(歌舞)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현재진행형(現在進行形)으로 우리들의 삶을 종횡으로 표현해내고 있지만, 전통적인 꾸림정보(콘텐츠)와의 연계성이 부족한 경우에는 자갈밭에 씨를 뿌리는 경우처럼 무모한 몸부림만으로 끝날 수가 있지 않은가. '현대적인 해석'이란 말의 가치는 엄연히 유효한 것임을 재고(再考)하게 된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은 오늘날로 넘어와 두 개의 버전(version)으로 재생산된 면목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싶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길고 긴 세월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김연준, '청산에 살으리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기나긴 죽음의 시절,/꿈도 없이 누웠다가/이 새벽안개 속에/떠났다고 대답하라./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흙먼지 재를 쓰고/머리 풀고 땅을 치며/나 이미 큰 강 건너/떠났다고 대답하라."(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청산에 살고 싶든, 청산을 찾아 떠나거든 시간이 흐를수록 몽연(蒙然)해지는 것은 청산보다는 인간의 정체성(正體性)인 것 같다. 청산은 언제나 가만히 있는데, 들썩거리고 쑤셔대는 것이 인간의 모자람이 아니던가.

청산대처법(靑山對處法)보다는 오히려 인간대처법(人間對處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만첩청산(萬疊靑山)을 있는 모습 그대로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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