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풀뿌리민주주의
흔들리는 풀뿌리민주주의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5.12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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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시민 참여를 원칙으로 1995년 첫 선거를 치르며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연 풀뿌리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100여곳의 자치단체장들이 비리와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충청권 내 단체장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한용택 충북 옥천군수가 인사와 관련해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가 건설공사 몰아주기 대가로 업자로부터 수억원대의 아파트와 별장 등 뇌물로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외에도 혐의를 가진 단체장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

이처럼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토착비리는 시민들에게 허탈감과 함께 지방자치의 무용론, 폐지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달 국회 행정체제개편특위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골자로 한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법'을 처리하고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의 기초의회를 폐지하는 대신 각 구나 군에 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던 풀뿌리민주주가 시행 15년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기초의회 폐지 주장에는 구청장과 군수들의 잇따른 비리 외에도 무보수 명예직으로 시작했던 군·구의원들의 높은 연봉도 이유 중 하나다. 또 연간 인건비도 천억원대에 이르는 등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역할이 미미하다는 점도 폐지론을 대두케 했다. 그동안 기초의회는 이권과 인사 청탁과 뇌물수수 등 비리에 휩쌓여 시민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기보다 무관심과 혐오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초의회 폐지에 따른 우려감도 적지 않다. 인건비 절약이나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 속에는 중앙으로 힘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특별법에는 구청장의 권한을 축소하고, 구의회기구를 폐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해 준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면에 권한 축소를 통해 소소한 사업추진 시 반대나 갈등의 소지를 없애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고 보면, 기초의회 폐지론도 달갑지 않다.

또 기초단체장을 견제하고 행정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자칫 행정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기초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 조직됐다.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지방 국회인 셈이다. 많은 장점을 지닌 풀뿌리민주주의가 몇몇 부작용으로 내쳐진다면 이또한 국력낭비다. 더구나 참여민주주의와 지방 분권을 통한 민주정치 실현이라는 지방자치의 기본 정신에서 뒤로 물러서는 격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는 것이 현대사회다. 그래서 때론 님비현상도 나타나고, 이익단체들의 요구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나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관심을 부여하는 것이 풀뿌리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이다.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지방자치 뿌리내리기를 고민해야 할 때다. 모든 분야에서 '대화의 미숙'인 대한민국에서 대화를 통한 타협의 정치를 지향하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자리매김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방선거에 대해 시민들의 무관심과 냉소가 심화되고 있는 반면, 옥석을 가리자는 운동도 한 켠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자정적 성격을 찾아가는 일면이라고 보인다. 성숙한 민주주의가 자생할 수 있도록 제거의 칼보다는 포용의 칼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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