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모성애
짓밟힌 모성애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31 2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권익위원칼럼
김정자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하는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 바르다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며 우리 민족에게 찬사를 보내왔다.

조선시대에도 충보다 효를 더 중시하였고 모든 세상사 근본이 효에서부터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 왔지 않았던가.

고이 길러낸 연예인 남매 최XX, 최XX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짓밟고 떠났다. 어머니는 남매를 목숨을 걸고 끔찍한 사랑으로 그들을 성장시켰을 것이다. 어찌 이리 말도 안 되는 철부지 연예인 남매의 자살소동으로 온 세상 어머니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것일까? 떠난 남매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은커녕 괘씸한 생각뿐이다.

한국인의 모성애는 다 같을 것이다.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찌 고이 길러준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두 개씩이나 박고 떠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세상이 변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주어진 십계명 중 첫 번째로 '살아있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아닌가. 효도는 못할지언정 어머니의 모성애를 짓밟아 놓고 떠나버린 매정한 두 남매를 누가 곱다고 하겠는가.

무엇이 그리 그들의 어머니께 비수를 찌르고 떠날 만큼 되었는지. 자살로 떠나버린 그 남매의 불효막심함으로 그 고운 모성애가 무참히 짓밟힘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가 없다. 그네들은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선택해서 갔겠지만, 그 어머니는 나머지 인생을 어찌 머리를 들고 살란 말인가.

웰빙에서 웰다잉으로 인생을 마감해야할 세상이 되었다. 나라에서도 어찌 하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가로 전국적으로 복지회관이나 교육할 수 있는 시설에서는 붐이 일어났다. 중년만 되어도 미리 써보는 유서도 작성하면서 본인의 아름다운 죽음을 서서히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사회가 되었다.

화살같이 흐르는 세상에서 무엇이 그들 남매의 생명 명줄을 끊어가며 남은 어머니에게 깊은 상처와 원망을 남기고 떠나야 했을까? 그런 용기만큼 삶에 애착을 두고 살아간다면 무엇이든 일구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께 정성껏 잘 섬기는 효는 그만두고라도 어머니를 죽음보다도 더 무섭고 몸부림을 치도록 살기 싫은 세계로 밀어 넣은 그 남매는 애처롭기보다는 온 세상의 어머니들에게서 지탄을 받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연달아 생명 줄을 스스로 끊은 철부지 남매가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남겨놓은 서하지통(西河之痛)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무모한 일은 저지르지 않았으리. 그 어머니는 앞이 깜깜하게 눈이 멀어 버리는 고통을 맞이했을 것이다. 언제쯤 눈이 밝아져서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는지….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은 이따금 생각이야 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아무 느낌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 앞에 먼저 떠나면 평생을 그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니 부모와 자식이 생각하는 바가 그렇게 다르다는 인간사가 아닌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