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만드는 힘 '질시'
유행을 만드는 힘 '질시'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1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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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정의 소비자 살롱
유현정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
언제부터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고, 따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땅은 좁고 인구는 많다보니 늘 가까이에서 부대끼며 지내느라 본의 아니게 옆집 숟가락 젓가락이 몇개인지까지 알게 되었을 수도 있고, 요즘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전세계 유행의 첨단을 누구보다 먼저 접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게오르규 지멜은 유행이 만들어지는 원리로서 트리클다운 이론(trickle-down theory)을 주장하였는데, 트리클다운 이론이란 상류층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면 하류층에서는 상류층의 스타일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새롭게 도입되었던 스타일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상류층에서는 또다시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내게 되고 새로운 유행이 창조된다. 19세기는 신분에 따라 소비생활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대였다. 의복과 장신구는 신분의 상징이요 부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상류층이 채용하는 스타일은 하류층으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으면서도 영원히 따라잡고 싶은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지멜은 이와 같이 유행이 창조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상류층의 스타일을 따라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저를 경쟁적 모방(emulation)이라고 하였다. emulation은 immitation과 달리 단순히 누군가를 흉내내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리적 기저에 상대에 대한 경쟁심과 질시가 담겨 있다.

현대사회에서 계급은 이미 사라졌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한다. 값비싼 명품브랜드를 구입하는 것, 너무나 희소해서 남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만 골라 사는 것, 낭비처럼 보이는 의도된 사치들. 이 모든 것들은 '나는 이 정도의 사치쯤은 사치가 되지 않는 사람이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변에서 이런 거만함을 목격하게 되면 순간 내재된 질시본능이 꿈틀거리게 된다.

서둘러 상대가 가지고 있는 명품옷을 구입하고, 혹은 상대가 가진 그 이상의 고가품을 보란듯이 구입한다. 경쟁하듯 소비하고, 경쟁하듯 낭비한다. 질시를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유행은 사이클을 그린다. 딱 그만큼만 유행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소비의 주체성 또는 자기결정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인식하고자 하는 심리는 스스로의 소비생활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만족의 크기와 지속성을 감소시킨다. 나도 이제 뒤지지 않는다고 잠시 흐믓해 하다보면, 축난 지갑이 볼멘소리를 토해낸다. 정신을 차리고 어쩌나 하는 동안 경쟁자는 훌쩍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소비수준을 뽐내며 약을 올린다.

결론은 경쟁심을 버리는 것이다. 첨단유행으로 한껏 치장을 한, 값비싼 명품으로 잔뜩 폼을 낸 라이벌을 만난다면 그저 칭찬을 해주고 말자. 경쟁으로 치달을 것만 같은 지나친 관심을 잠시만 진정시키자.

부러우면 지는 거다. 명품 하나 가졌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멋지다고 솔직하게 부러움을 표시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한 수 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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