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법부를 욕하는가
누가 사법부를 욕하는가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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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우리나라 사법부 스스로가 꼽은 '사법 60년사 치욕의 판결'을 보면 할 말을 잊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의 인혁당 사건 판결이다.

전국으로 번지는 유신 반대투쟁에 골머리를 앓던 박정희 정권은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무고한 지식인 23명을 국가보안법상의 체제전복 혐의로 옭아 맸고,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던 사법부는 이 중 8명에게 사형을, 나머지 15명도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까지 중형을 선고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형이 집행된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아무리 사법살인이라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음에 주목한 것이다.

그 시절, 다방에서 물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한 시민은 유언비어 유포죄로 체포돼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떤 이는 술집에서 당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정부는 정당한 데모를 한 학생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역시 징역 5년에 처해졌다. 이러한 엉터리 판결의 배경은 물론 서슬이 퍼렇던 권력이다.

뒤늦게 법원이 스스로의 치부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을 뒤풀이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이기도 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런 판결의 단초를 제공한 검찰에도 과거사 반성을 위한 계기가 한 번쯤은 있었으면 하는 게 국민적 바람이지만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결정과 강기갑 의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보수언론이 단단히 화가 났다. 하기사 이 두 가지 사안은 이들 메이저 언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공들인 것이기에 자신들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상황이 여간 당혹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판결로 마치 나라가 쪽박이라도 날 듯이 자기들만의 위기감을 조성하는가 하면, 아예 노골적으로 법원과 검찰의 싸움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노라면 천박하기까지 하다.

이들 두 판결의 시시비비를 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럴만한 전문식견도 없고, 더구나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언론의 법 감정은 개개의 실정법 조항들이 가지는 논리를 적확하게 끄집어 내기엔 그렇게 냉정하지 못하다. 굳이 언론과 법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든 사회현상에 대해 결국 두 집단의 지향점은 상식의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용산참사의 수사기록 공개결정은 일반인들의 법감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제도적 혹은 절차적 문제를 따지는 것도 '법의 정신'을 곧추세우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겠지만, 그보다는 법 운용의 실제적인 정당성 여부를 가리고 싶은 게 우리같은 범인들의 생각인 것이다.

용산참사의 재판 자체가 경찰의 강제 진압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항거를 따져 판단하는 상대성의 사안임에도 한쪽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수사기록을 은폐한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국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처럼 정권과 검찰, 법원이 한통속이 돼 일사천리의 법집행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야만은 더 이상 있을 수도 없고 용납되지도 않는다. 정작 국민들을 심란케 하는 것은 이번 사례처럼 '법치를 가장한 이해관계의 충돌', 더 나아가 이로 인한 사회적 몰가치의 횡행인 것이다. 검찰의 기소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극도의 히스테리를 보이고 있는 보수언론의 행태가 바로 그렇다.

또 한 가지, 만약 법원과 검찰이 지금처럼 서로 긴장관계를 늘 유지했다면 인혁당 사건 같은 부끄러운 판결은 애초부터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은 아니지만 법원과 검찰이 다투면 다툴수록 오히려 믿음은 더 간다. 어느덧 우리 사회가 다시 권위주의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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