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를 가슴에 묻고
누이를 가슴에 묻고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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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자유기고가>
기차길옆 양지바른 기슭에 한 살 터울 누이를 묻던 지난 12월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그날도 사람들은 이미 이승엔 없는 당신의 육신과는 아랑곳없이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거나 혹은 돌아오기에 분주합니다.

누나! 그날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는 차마 국화꽃잎 하나 뿌려주지 못한 회한으로 몸서리를 앓고, 나는 그 피눈물에 몸 둘 바를 모른 채 그저 희뿌연 하늘만 원망하고 말았습니다.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고, 어느 새 해는 바뀌었습니다.

암 덩어리를 가슴에 매달고 고통에 떨어야 했던 누나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누나가 생을 달리하기 불과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살아생전 늘 남다르게 사랑했던 나를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혹여 악착같은 생명의 희망을 툭- 하고 놓아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차일피일 미루던 병문안 길의 떨리던 기억은 이제 짙디짙은 후회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누님! 키 작은 당신이 그래도 동생이라고 손을 꼭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을 이끌어 주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대청마루에 나란히 누워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대롱대롱 거미줄에 옥구슬...'을 부르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 당신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죽어도 잊지 못할 일, 내가 막 성적 호기심이 생겨날 때 남몰래 훔쳐보던 누님의 봉긋한 젖가슴과 그 생각의 부끄러움을 씻지도 못한 채 당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만 것인가요.

누님! 당신이 누운 그 한 평도 안 되는 땅, 그 자그마한 봉분엔 아직 흰 눈이 고스란히 덮여 있을 테지요. 당신 돌아가시고도 일이 바쁘고, 사람들의 희번덕이는 눈초리가 사납다는 핑계로 마음껏 소리 내어 울어버리지도 못한 내가 지금은 차라리 원망스럽습니다.

그리하여 혹시 누님 또한 나를 닮아 아침이 되어도 몸도 마음도 갈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황망함에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살아있음과 죽음의 경계에서 정작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고, 정작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옳은지를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시집 장가도 가지 못한 채 홀아버지와 오롯이 남겨진 살아남은 누님의 피붙이들을 애처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도 같은데...

그보다는 그토록 짧기만 한 인생의 질곡에서 겨우 시름 떨쳐내고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던 찰나에 세상을 등져버린 누님의 한 많은 삶이 차라리 몸서리쳐지는 가슴울림입니다. 누님! 살아있음은 그래도 살아있음입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던 눈물과 가슴 저리던 슬픔은 이미 어느만큼 진정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누님의 기억은 조금씩 사라져 갈 테지요.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지난해 절망했던 사람들은 다가오는 설날 이후를 새해로 삼겠다는 간절한 희망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2010년 경인년 새해를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새해 첫날 신새벽부터 해맞이에 나섰겠지요.

그러니 누님! 당신도 부디 이승에서의 설움이나 회한, 또 피붙이들에 대한 간절한 연민 따위는 훌훌 떨쳐 버리고 그저 흰 눈 녹을 때까지 땅속 포근함 겨우겨우 붙들며 평안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다만 새해에는 사람들이 부디 보다 착하게 살며, 남을 음해하거나 시기함이 없이 제 실력대로만 살아도 인정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누님을 제 가슴에 묻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의 기억은 가슴에서 한 겹씩만 벗겨 내며, 누님이 못다 한 설움 이겨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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