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남긴 것
폭설이 남긴 것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0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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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정의 소비자 살롱
유현정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
신정연휴를 마치고 대부분 시무식이 있던 4일 아침.

기상관측 이래 최대라는 폭설로 전국이 발이 꽁꽁 묶여버리는 대혼란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던 필자도 5시간을 차 속에 갇혀 계획에 없던 온갖 상념에도 빠져보고, 신년 계획과 다짐도 되새겨보고, 심지어 미처 못드렸던 새해 인사까지 휴대폰으로 대신하였다.

부족한 잠을 자고 또 자도 여전히 차는 움직이질 않았다.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처음엔 불안하고, 걱정되더니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면 무얼하고, 무얼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연방 죄송하다 양해를 구하며 진땀을 뺐다.

그렇게 2시간여가 지나자 드디어 모든 것이 포기되면서 무력감이 밀려왔다.

수많은 제설차와 인간띠를 그리며 눈을 치우는 많은 관련자들의 노고를 차 안에서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예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부터 퇴근까지, 비행기는 물론 버스에서부터 기차, 지하철까지 어느 교통수단 하나 온전하지 못했던 이번 폭설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많은 이들이 하루벌이를 망쳤고, 중요한 계획에 차질을 빚었으며, 많은 차들이 빙판길 미끄러짐으로 정비소 신세를 지고, 병원 역시 골절 환자가 넘쳐났다.

늘 습관처럼 반복되는 늑장대응에 대한 비난, 누구는 고생을 하고, 누구는 태만했다는 화풀이성 비난, 선진국과 비교하며 무조건적으로 우리의 재난관리능력을 비판하는 쓴소리들, 나아가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온갖 불편한 이야기들이 불편한 심정을 더욱 씁쓸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지금 절대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일 것이다.

충북 산간지역에서는 간이상수도가 끊겨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계곡물을 녹여 생활용수로 사용할 지경이라고 한다.

양계장이 붕괴되고 비닐하우스가 전파되는 등 충북 지역 사유시설의 피해액이 92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들 대부분의 피해농가들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대상에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은 데다 재작년부터 시범 실시하고 있는 풍수해보험 역시 가입되어 있지 않아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없는 처지라고 한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정부의 복구지원자금 역시 산정 기준과 절차가 복잡하고 일부는 융자 형식으로 지원돼 농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주요 과수품목 11개에 대해서만 가입이 이뤄지고 있는 농작물재해보험이 다른 작물에까지 조속히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3월부터는 풍수해보험이 전국적으로 본격 실시되어 보험을 통해 시설물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하니 농민들도 풍수해보험에 적극 가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폭설을 보며 느낀 점이 또 하나 있다.

언제부터 눈은 누군가가 당연히 치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가 공무원, 경찰, 군 돌아가며 비난하기 전에 눈이 내리면, 신나는 마음으로 이웃이 모두 함께 눈쓸기 놀이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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