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민심과 방기곡경(旁岐曲逕)
충청도 민심과 방기곡경(旁岐曲逕)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9.12.22 2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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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오늘 아침 한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서는'당신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뭐냐'는 청취자들의 참여코너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꼽은 사자성어를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점입가경(漸入佳境)-정치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화중지병(畵中之餠)-경기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림의 떡이다. 함흥차사(咸興差使)-취업 원서 넣었는데 소식이 없다. 다사다난(多事多難)-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이 이어졌다.

한 해 동안의 감회를 비유하는 사자성어는 넘쳐났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올 한 해 동안 사건도 많았고 기억할 만한 일도 많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인정 받는 것은 교수신문이 해마다 이맘때쯤 발표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다.

올해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을 꼽았다.

샛길과 굽은 길을 뜻하는 '방기곡경'은 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조선 중기 율곡 이이가 '동호문답'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소인배는 "제왕의 귀를 막아 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 교수들은 정부가 신뢰를 저버리는 정책 추진으로 인해 현재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여러 현안들을 진솔하고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임기응변 식으로 모면하려는 인상이 강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이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 신문의 필진과 일간지 칼럼니스트, 주요 학회장, 전국대학 교수회 회장 등 지식인들이다. 이들의 반MB정서가 얼마나 강한가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유선진당은 이명박 정권은 '방기곡경'을 새겨들어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친박연대는 방기곡경을 우이독경해선 안된다고 했다.

정치권의 반응을 접하면서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정운찬 국무총리의 요즘 행보와 사뭇 오버랩이 된다.

이달 들어 국무총리를 비롯 장차관들의 충청도 방문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과거 같으면 그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서 가다려야 할 정도였다. 일년에 한 번 보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충청도 방문은 시도때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횟수만 늘어났을 뿐이지 민심은 요지부동이다. 충북권 일부 단체장들의 수정안 옹호 발언으로 다소 시각차는 보이기는 했어도 큰 기조는 역시 원안고수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만나기 힘들었던 총리까지 주말마다 방문을 해도 민심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된 여론수렴방식 때문이다.

지난주 청주 방문에서는 사회시민단체와의 간담회가 국무총리실측의 비공개로 옥신각신했다.

다음날 대전에서 열린 조찬간담회는 소위 수정안에 긍정적으로 분류되는 관변단체 인사위주로 진행되고, 이마저 비공개였다.

그리고 이해를 구하거나 설득하려는 자세도 없다. 대부분 기존 발언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전혀 타협이 존재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그래서 간담회가 여론수렴인지, 일방적인 보고회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내려오지 않는 것만도 못한 꼴이다.

결국 정 총리의 잇단 충청권 방문은 '충청민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수정안 마련이었다'는 구실을 마련하는 방편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 모든 것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세밑 충청도민들에게는 '방기곡경' 이 네 글자가 어느 해보다 뼈저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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