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사의'로 훈계할 분들은 따로 있다
'견리사의'로 훈계할 분들은 따로 있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9.12.16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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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보은·옥천>
춘추시대 유학자 자공(子貢)은 공자가 칭찬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애제자였다. 노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고 장사에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중국 최초의 재벌로도 꼽힌다. '천하의 재물은 모두 자공에게로 흐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세속의 성취에서는 스승을 능가했던 인물이다. 당대 최고 부자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주창했던 공자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그러나 공자의 행적을 살피다 보면 그가 경제를 중시한 언행이 적지않게 발견된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만일 귀한 구슬이 있다면 상자에 담아 간직하겠습니까. 아니면 내다 팔겠습니까". 공자는 서슴없이 "팔겠다"고 답했고 "좋은 값을 쳐줄 중매인을 기다릴 뿐이다"고 덧붙였다. 공자가 자공의 상업적 성취를 높이 평가한 것도 그의 경제관을 대변한다. 자공이 나는 어떤 그릇이냐고 묻자 '제단의 중앙을 장식할 호련(蝴璉)'이라고 칭찬했다. 공자는 경제활동을 옹호하면서도 이윤을 추구하는 경계를 분명히 했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의 경제철학을 함축한 말이 논어에 언급한 '견리사의(見利思義)'이다. 이윤과 재물을 추구하되 의롭지 않으면 멈추라는 것이다. 공자가 평생 자공을 우호적으로 평가한 것은 그가 축재를 하면서도 스승의 지침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공은 공자가 죽자 동료들과 3년상을 치렀고, 탈상 후에도 혼자서 3년간 더 시묘살이를 했다. 세속의 욕망을 쫓는 삼류 장사치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가 당대 최고의 권력과 재력을 누리면서도 그에 매몰되지 않고 도리에 충실했던 것은 이(利)에 앞서 의(義)를 생각하라는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LPG 가격을 담합한 업체들에 66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모 혐의를 받는 업체들은 하나같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재벌기업들이다. LPG는 택시기사를 비롯해 영세 사업자와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생계형 연료이다. 글로벌기업을 지향한다는 대기업들이 서민 경제에 직결되는 생필품을 놓고 가격을 공모해 부당 수익을 올린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결정판이다. 자진신고를 해서 다른 업체들의 혐의까지 입증해준 대신 과징금 수천억원을 면제받은 한 기업의 처량한 처세는 동정심까지 유발시킨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알려진 효성그룹 가족들은 불법으로 해외에서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확인한 것만도 LA 소재 450만달러짜리 주택과 콘도를 비롯해 7건이며, 구입자금은 1265만달러(147억여원)에 달한다고 한다. 제2의 IMF가 왔다며 국민들이 허리 띠를 졸라매고 뛰는 동안에 이들은 출처 불명의 돈으로 외국에서 부동산 사재기를 해왔던 것이다.

정부가 외치는 '기업 프렌드리'가 세간에 먹히지않는 것은 국민들의 뒤틀린 정서 때문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자초한 결과임을 반증하는 사례들이다. 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견리사의'가 엉뚱한 곳에 등장해 수난을 겪었다. 그제 한 여당 의원이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정우택 충북지사에게 '견리사의'를 들먹이며 따졌다고 한다. 충청도가 '세종시'라는 의롭지않은 이익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인가. 세종시 탄생의 배경을 한 번이라도 되짚어본다면 이런 망언이 나올 리 없다.

이 말을 다시 주워가서 시장 장사치만도 못한 재벌기업들을 일갈할 때 써 먹기 바란다. 그럴 배짱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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