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감옥의 한지수씨
온두라스 감옥의 한지수씨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9.12.09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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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 작(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개봉 후 평단으로부터 사상 최고의 전쟁 영화라는 극찬을 받았다. 영화는 실제 스크린에서 세계 2차 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핸드헬드 촬영 기법으로, 기관총에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 관객들은 전장(戰場)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출동한 미 공수부대의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는 사령부로부터 라이언(맷 데이먼)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라이언과 함께 참전한 3명의 형이 모두 전사하자 미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남은 막내아들을 홀로 사는 엄마에게 돌려주려고 한 것.

이때부터 밀러 대위가 팀을 급조해 1개 분대 8명을 이끌고 유럽 전장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라이언을 찾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마지막에 라이언을 구하고 밀러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모습은 지금도 가슴 찡하게 감동으로 남는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라이언의 실재 모델은 당시 미 101 공수사단 소속의 프레데릭 닐랜드(Frederick Niland) 병장. 그는 다른 3명의 형과 함께 모두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이후 형들이 모두 전사하자 아이젠하워 정부는 막내인 그를 전장에서 빼내려고 생환 작전을 펼쳤다. 그때 실재 인물인 밀러 대위를 비롯한 많은 군인이 전사했다. 영화처럼 미국은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 곳곳에서 자국인 포로 구하기에 힘을 쏟고 있다. 꼭 군인이 아니더라도 우린 이따금 뉴스로 미국이 자국인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와 희생을 치르고 '작전'에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2. 최근 네티즌들이 한지수(26·여) 구하기에 나섰다. 한씨는 남미 온두라스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복역 중이다. 그는 지난 8월 이집트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하다 공항에서 인터폴에 체포됐다. 1년 전 같은 건물에 살던 네덜란드 인이 사망했는데 느닷없이 1년 후 살인 용의자가 됐다.

그의 억울한 사정이 한 달 전 KBS에 소개됐다. 방송은 온두라스 검찰이 내세우는 살인 혐의에 대해 법의학자를 동원해 그의 혐의가 부당한 것임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 외교 당국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을 비판했다. TV에서 제작팀은 "한씨가 온두라스의 한국 대사관에서 신원 보증만 서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데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가 막힌 일이다. 한씨가 구속된 온두라스의 감옥은 TV에서 비친 그대로 난민 수용소 같은 곳이다. 천막을 친 낡은 건물, 먹는 음식은 물론이고 그 열악한 환경을 보면 법정보다는 질병과의 전쟁이 더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 우리 대사관은 '전례가 되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씨를 외면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비난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씨는 앞으로 2년간 그곳 감옥에 갇힌 채 재판을 받아야 한다. 또 그곳 검찰의 논리라면 고스란히 살인죄를 뒤집어쓸 처지에 놓여 있다. 정부는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법의학자를 현지에 파견하며 뒷북을 치고 있다. 그럼에도, 한씨의 석방에는 미온적이다. (한씨의) 도주가 우려된다면 대사관에 가둬놓으면 될 일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씨를 잃으면서 무기력한 스스로의 모습에 땅을 친 적이 있다. 이번 한씨의 사건에서 또 그런 씁쓸함을 맛봐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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