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한 군의원을 생각하며
고인이 된 한 군의원을 생각하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9.12.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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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보은·옥천>
지난 2004년 영동군을 달군 최대 이슈는 '영동군의 (주)와인코리아 출자'였다. 명확하게 갈린 찬반이 날카롭게 대립해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될 정도였다. 읍내에서는 출자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져 주민 수천명이 참여했다. 포도 재배농가들을 주축으로 한 찬성파들도 서명운동으로 대응하며 분란은 최고조에 달했다. 열쇠는 군비 22억5000만원을 와인코리아에 투자하겠다는 군의 계획을 상정받은 군의회가 쥐고 있었다.

바깥의 치열한 논란과는 달리 군의회 처리 결과는 일찌감치 예정돼 있었다. 11명의 의원 중 단 한 명, 지금은 고인이 된 최동춘 의원만이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의 논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이미 저가의 수입 포도주들이 물량공세로 국내 포도주 시장을 90% 가까이 잠식한 상황에서 대기업도 포기한 국산포도주 개발에 진출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군이 전문기관에 의뢰한 타당성 조사결과서가 와인코리아의 재정상태를 비관한 대목을 들어 신뢰성 문제도 제기했다. 지역 선배와 친구들이 설득하고 당적이 같은 군수가 애소했지만 '요지부동'이요 '초지일관'이었다.

그러나 적잖은 포도재배 농가들을 유권자로 둔 면 지역 의원들은 '지역포도 판로가 확대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찬성을 합창했다. 영농단체 단위로 분산 지원해 작지만 다양한 포도주 생산농가를 육성하자는 최 의원의 대안은 들어설 틈이 없었다. 와인코리아 임원들이 의회로 몰려와 방청석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최 의원의 의정발언을 저지하는 치욕적인 사태가 터졌는 데도 어느 의원 하나 나서지 않았다. 반대 주민들은 의원들 스스로 의회의 조종을 울렸다고 비난했다.

의회내에 단 한 명의 우군도 없는 일방적 상황이 되자 최 의원은 아예 투자안 처리에 불참했고, 결과는 10대 0 만장일치 통과였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영동군에 와인코리아 지분 회수 및 매각을 권고했다고 한다. 행안부는 전국 민관합작 법인에 대해 경영진단을 벌이고 경영이 부실하거나 비전이 없는 9개 법인을 가려내 이같이 조치했다. 영동군도 행안부 권고를 따를 것으로 보여 결국 와인코리아 투자는 최 전 의원의 예상대로 실패작으로 귀결될 공산이 커졌다.

최 의원은 당시 동료의원들에게 "잘못되면 사재를 털어서라도 예산을 통과시킨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표결에 임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들은 거의 현직에 남아있지 않다. 최 전 의원은 지난 2006년 갑자기 위암에 걸려 47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만장일치로 투자를 밀어줬던 의원들은 그렇게 표밭을 의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선거를 전후해 대부분 의원직을 마감했다.

영동군은 3년전부터 농가 와이너리를 육성 중이며 이들을 100가구까지로 확대한 후 포도주축제를 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생전에 최 의원이 와인코리아 투자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바로 그 시책이 이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끝까지 소신을 지켰을 뿐 아니라 정확한 판단에 적절한 대안까지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게됐다.

영동군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조만간 30억원의 빚을 내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영동군과 군의회가 수억~수십억원대 신규 사업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와인코리아 사례의 재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인이 돼 잊혀가고 있지만 한 군의원의 우직했던 자세가 늦게나마 지역에 '타산지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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